우리 아이 복지카드를 만들었어요
결혼 전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나는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비혼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8년 전쯤 된 일이다. 어느 날 우연히 복지카드를 보게 되었다. 그 복지카드가 나를 흔들리게 한건 카드의 주인은 아주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카드.
글쎄 아이는 몇 살쯤 이였을까? 3살? 아니면 그보다 더 어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복지카드를 보고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너무 아기인데, 난 정말 아이가 아프면 못 키울 거 같아.”
그 친구는 나와 나이가 동갑이지만 두 명의 아이를 둔 엄마였다.
“그래. 정말 어려울 거야. 근데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더라. 그래서 조심해야 해. 우리가 가볍게 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어.”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근무하는 사무실 옆 다른 부서 직원이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분이 들었다면 상처까지는 아니라도 씁쓸한 마음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쉽게 뱉어 버린 말은 화살이 되어 나에게로 돌아온 것일까?
오늘은 미루고 미루던 꼬달이의 복지카드를 신청하러 동사무소로 향했다.
병원 의사나 어린이집 원장님은 일찍 어릴 때 장애 등록을 해둬야 혜택을 많이 볼 수 있다고 계속 나를 설득했지만 실행에 옮기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장애 등록을 한다고 한들 나라에서 얼마나 혜택을 주고 배려를 해주나요? “
돈 몇 푼의 혜택보다 내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꼬달이는 내년에 학교를 가야 했다.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가느다란 보호망이라 할지라도 붙잡아야 되는 상황에 놓였다.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아무리 내 마음이 속상해도 챙겨 담아야 했다.
장애등록까지 하고 복지카드 신청을 하러 가는 걸 미루고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는 분이 우리 동네 동사무소 복지업무 담당자였기 때문이다.
아는 지인은 그래서 남편을 동사무소에 보냈다고 했다. 나는 이 정도는 괜찮다며 동사무소로 향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담당 직원이 연가를 썼다거나 오랜만에 보는 거라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길 기대했다. 역시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친절하게 나를 알아보며 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 나는 어색하게 잘 지냈냐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 온 용무를 말했다.
내 신분증과 꼬달이의 사진을 내밀었다. 담당 직원은 신청서를 내밀며 친절하게 관련 업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5분이나 시간이 흘렀을까 담당 직원은 신청이 다 끝났다며 복지카드는 등기로 발송될 거라고 했다.
우린 간단한 어색한 인사말을 나누고 헤어졌다. 코로나가 터지고 한 가지 장점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는 불편한 대신에 얼굴 표정을 적당히 감출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어색하게 굳어진 얼굴을 그 직원에게 들키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바로 지인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동사무소에서 만난 담당 직원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와 우리 꼬달이를 불쌍하게 생각했을까? 아니면 아직 아이는 없지만 같은 여자로서 육아의 현실에 겁이 났을까? 어쩌면 오늘 나를 만난 일을 아는 누군가에게 전달할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나오지 않았다면 그 직원이 느꼈을 감정과 생각 따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우리 꼬달이의 얼굴이 인쇄된 복지카드는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
카드를 보며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기분이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속상해할 것도 아니다.
그냥 다 살아가는 하나의 모습일 뿐이다.
8년 전과 입장이 달라진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우리 꼬달이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