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느리게 갑니다
꼬달이와 나는 매주 등산을 한다. 성인이 중간에 쉬지 않고 걸으면 한 시간이면 오르고 내려올 수 있는 그런 작은 산이다.
우리 동네 작은 산은 비교적 완만해 아이와 등산이 부담스럽지 않다. 아이들이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작은 기구들도 있다. 더불어 푸른 기운을 받을 수 있으니 이만한 곳이 없다.
산 초입에 차를 세워두고 데크를 따라 오르면 양쪽으로 갈라지는 산길이 나온다. 우리는 경사가 있는 오른쪽 길을 택한다. 얼마 가지 않아 작은 늑목과 철봉을 만난다. 꼬달이는 신나서 달려가지만 기구에 매달리는 건 두세 번뿐이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외나무다리 운동기구를 만나게 되는데 꼬달이가 참 좋아하는 한다. 겁이 많은 꼬달이는 또래들처럼 성큼성큼은 아니지만 사뿐사뿐 자기의 속도에 따라 외나무다리 기구를 끝까지 타고 내려온다.
요즘 꼭 빠지지 않은 곳은 그네가 있는 곳이다. 산 입구에 숲유치원이 있다 보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조성해 두었다. 그곳에 가면 나무와 나무를 연결한 작은 그네가 있다.
꼬달이는 지나치지 못하고 달려가 그네를 탄다. 나는 그런 꼬달이를 기다려준다. 이렇게 놀다가 언제 산에 올라갈 수 있을지 싶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한 즐거운 등산길이다.
꼬달이와 나의 걸음은 꽤나 느린 편이다. 이미 등산 초반에 이것저것 타고 놀다 보니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사람들은 이미 우리를 한참 앞서갔다.
등산에 집중하며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걸어가 보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지나쳐 앞으로 가버린다. 우리는 우리 속도에 따라 산을 올라간다. 엄마가 빠르면 엄마가 꼬달이를 기다려주고, 꼬달이가 빨리 가면 꼬달이가 엄마를 기다려준다.
산길을 가다 힘들어하거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리면 나는 꼬달이에게 말한다.
“꼬달아, 바위에 가야지.”
그럼 얼른 일어나 엄마보다 앞서서 걷기 시작한다.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고 정상을 채 못 간 곳에 있다. 그곳은 산 절벽으로 저 멀리 기차와 차들이 보인다. 이 산에서 경치가 최고로 좋은 곳이다. 열심히 정상에 올라가도 멀리 경치를 볼 수 없는 게 이 산의 단점이다. 정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바위 절벽은 꼬달이가 좋아하는 곳이다. 달리는 자동차를 볼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나도 꼬달이를 닮아가는지 이곳에 오면 기차를 기다린다. 터널을 빠져나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기차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날은 왠지 운이 좋은 날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계단을 조금 더 올라가면 정상에 올라갈 수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등산을 멈추고 쉬기로 한다. 앉을 수 있는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본다. 가지고 온 물과 꼬달이가 좋아하는 귤을 까먹기도 한다. 우린 꼬달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까지 천천히 올라와 천천히 산을 내려간다.
산을 내려가는 길에는 앞서가는 꼬달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오래 걸려도 괜찮다. 우리에게 맞는 속도로 올라가면 된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정상이 아니어도 괜찮다. 모두가 원하는 그런 높은 곳이 아니어도 된다. 꼬달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
우리에게 명확한 목적지가 있다면 그곳을 향해 천천히 가면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