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개학하고 처음 맞는 일요일이다. 여름 방학이 끝났지만 풀에게 여름은 아직이다. 비가 안 와 땅이 바짝 말랐는데도 풀은 무성하다. 그러게 왜 맨땅에 생강을 심었나. 3주 만에 다시 김을 맨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 해가 넘어가는 시간을 기다렸다 밭으로 나갔다. 해가 넘어갔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바람이 부는지 어쩐 지도 모르겠다. 땀복을 입고 수건을 두 개나 싸매고 들어가서 그렇다. 땀방울이 눈에서 코에서 마구 흘러내렸다. 그것이 눈물방울인지, 콧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호미질을 해댔다. 흙이 튀어 장화 속으로 쑥 들어갔다. 땀도 성가신데 흙까지 튀어 오르고 난리다. 머리를 싸맨 수건이 이마에서 더 내려와 눈을 내리누른다. 땀도 내려오고 눈도 내려온다. 수건을 목에 그냥 두르고 올 것을, 고무줄로 꽁꽁 끝을 모아 묶었더니 얼굴 닦을 천이 마땅찮다. 괜히 땀복을 입고 나와서 소매에 닦을 수도 없고, 흙이 지지하게 묻은 장갑 등으로 얼굴을 훔쳤다. 따끔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땀 때문에 정신이 몽롱하다. 그저 흐르는 맑은 콧물과 같은 물기를 얼굴에서 닦아낸 것이 속 시원할 뿐이다.
3주 전 말끔하게 맨 생강밭이었다. 쪼그리 의자에 앉아 몇 시간 공을 들여 풀뿌리까지 뽑아낸 밭이었다. 그런데 풀이 다시 자랐다. 생강과 키 겨루기라도 하는지 생강과 몸매 겨루기라도 하는지 비슷한 키에 비슷한 굵기로 자랐다.
이번에는 풀의 종류가 달라졌다. 바랭이 반, 비름나물 반. 심지도 않은 비름은 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일이다. 비름나물이 바랭이풀 줄기보다 튼튼한 건 또 처음 알았다. 키는 또 얼마나 자라는지, 줄기는 또 얼마나 뻗어 나가는지. 손가락만 한 줄기가 뚝 끊어지면 지독한 뿌리가 땅 속에 박혀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풀뿌리를 뽑아내다 생강을 같이 파 버리는 일은 아주 가끔만 일어났다. (정말이다) 실수로 파버린 생강은 다시 잘 묻어줬다. 흙을 돋우고 토닥토닥해주며 생강의 장수를 빌고, 명복을 빌었다.
키 큰 생강은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뿌리가 네 개까지 번져 생강 순이 올라온 것도 있다. 물이 부족해 푸석한 이파리를 달고 그래도 살겠다고 애쓰고 있었다. 본 줄기 옆에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 건너뛰기를 해서 작은 생강 순이 나왔다. 어느 것은 엄마 옆에서 떨어지기 싫은 것처럼 어미 줄기 옆에 딱 달라붙어 있다.
생강의 위치를 먼저 확보하고 생강 주위의 풀들을 먼저 손으로 휘어잡아 뽑아낸다. 작은 풀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 집게로 쏙쏙 뽑아낸다. 그리고 호미로 땅을 벅벅 긁으면서 왼손으로는 풀을 줍고 잡아당겨한 데 모아 고랑 뒤쪽으로 보낸다.
저릿한 손을 잠시 쉬며 뒤돌아보면 고랑은 풀로 가득 찬 초록의 ‘풀장’ 같다. ‘풀장’ 가득 초록의 꺼지는 생명을 보라. 줄줄이 늘어서 소복하게 쌓인 풀 무더기가 장관이었다. 내 고랑 하나, 남편 고랑 하나, 두 개의 풀 무더기 고랑.
들판의 주력이 누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풀이 대부분인 생강밭.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격은 아닌지. 부러 심은 생강을 들판의 주인으로 만들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자연스러운 들판에 부자연스러운 농경을 하는 인간의 행위는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결실을 보아야 하니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고랑 밭을 두 시간에 걸쳐 맸다. 남편은 모기에게 열다섯 방 물렸다. 나는 한 방도 안 물렸다. 역시나 땀복을 입고 바지를 두 겹 입고 수건을 두 개나 싸매기를 잘했다.
sunday farmers
*사진은 8월 3일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