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 중
나는 웬만해선 지저분한 것에 화를 내지 않는다. 내가 청소를 깔끔하게 잘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눈에도 매번 꼭꼭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 화장실 구석에 처박힌 머리카락과 털의 뭉텅이. 하수구에서 나와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것은 지저분함을 넘어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스멀스멀.
남편은 늘 하수구가 막히면 머리카락을 꺼낸다. 내 머리가 길 때는 늘 뭉텅이로 빠지는 내 머리카락을 탓을 하며 구시렁거리면서 하수구를 뚫어 놓았다. 가족이 여섯인데 뽑히는 털과 머리털이 어디 내 것만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나이가 들면서 술술 빠지는 머리카락, 심지어 허리까지 오던 내 머리카락은 하수구 막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내 머리를 커트로 자르고 나서도 화장실은 매일 막혔다. 남편은 더 작은 머리카락 뭉텅이를 화장실 구석 바닥 어딘가에 꺼내놨다. 그런데 그걸 한 번도 치우는 걸 못 봤다. ‘내가 꺼낸 것을 한 번 봐라. 이런 것이 구멍을 막는다.’ 그러면서 알려주는 것인지, 자신이 매번 하는 일을 칭찬받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도대체 왜 그 불결한 찌꺼기를 안 치우는 것인지 몰랐다. 자신이 할 일은 딱 뚫는 것까지만이라고 간단하게 선을 긋는 것일 수도 있다.
일을 하면 마무리까지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수구를 뚫었으면 찌꺼기 처리까지 해야 옳지 않은가? 머리카락 찌꺼기를 보고 있으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과 궁금증이 뒤섞였다. 그러나 속으로 불평불만을 하면서도 나는 매번 머리카락을 쓰레기통까지 옮겼다.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그런데 오늘 화장실 청소를 하며 본 머리카락 찌꺼기는 달라 보였다.
구멍은 막히라고 세상에 존재하는 건지도 모른다. 콧물이 줄줄 흘러 콧구멍이 막히는 것처럼 화장실의 배수구는 때때로 막힌다. 세면대, 바닥 배수구, 변기까지 화장실의 온갖 구멍이 다 막힌다. 그 구멍이 막힐 때 우리는 모두 남편을 부른다. 남편은 ‘뚫기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왜 남편은 ‘뚫기 전문가’가 되었나? ‘뻥 뚫어’만 있으면 나도 뚫을 수 있다. 한참을 똥물과 씨름을 씨름을 하면 된다. 바닥 배수구가 막히면 도구를 이용해 열고 돌리고 꺼내서 이물질을 제거하면 된다. 세면대는 잘 모르겠다. 한 번 시도조차 안 해 봤다. 하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안 하는 이유는? 남편이 묵묵히 그 일을 잘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삼남 일녀, 네 아이 모두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걸 해내는데 우리 아이들은 각각 7년에서 9년이 걸렸다. 이제 막내가 열 살이다. 참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아이가 혼자 스스로 화장실에 가는 건 엄마에게는 정말 획기적인 일이다. 이제는 “엄마 화장실 가도 돼요?”를 묻지 않는 아이들. 그것에서 오는 여유로움이란 얼마나 쾌적하고 달콤한지 모른다. 화장실 시녀직을 내려놓고 탄탄한 여왕의 길로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각자의 자리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던 주말 오후였다. 화장실에 막 다녀온 딸아이가 대견해 어깨를 토닥였다. 그동안 대변 처리를 해준 나 스스로가 대견해 내 어깨도 두드리며 자화자찬을 했다.
“얘들아, 엄마가 18년 동안 너희들 똥을 닦았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얘들아 엄마는 ‘똥 닦기’였어.”
아이들도 남편도 듣고 피식 웃었다. 한 술 더 떠서 나의 공로를 치켜세우며 더욱 떠벌렸다.
“얘들아, 너희들이 어릴 때 엄마가 기저귀를 얼마나 갈았는지 몰라. 엉덩이에 묻은 똥은 또 얼마나 닦았는지, 그 똥을 물티슈로 닦고 세면대에서 씻었지.”
맞다. 아이를 덜렁 한 손으로 들고 보글거리는 거품을 만들어 엉덩이를 문지르고, 미지근한 물을 틀어 깔끔하게 씻겨줬다. 물에 씻겨야 엉덩이가 건강하다고 했다. 물티슈는 아기의 민감한 엉덩이를 아프게 했다. 남편은 나를 보더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세면대 뚫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왜 얘기 안 했어?”
“매번 말했지, 그런데 계속 아기 엉덩이를 세면대에서 씻기더라. 세면대에서 똥 찌꺼기가 얼마나 나왔는지 몰라. 그걸 다 손으로 일일이...”
나는 몰랐다. 남편이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도 몰랐다. 세면대가 똥 때문에 막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아기 엉덩이 씻기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애 보느라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 나는 남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까. 아기 엉덩이 씻기는 나만 힘든 줄 알았다. 그런데 매번 똥 찬 세면대를 하수 배수구를 손으로 두었던 남편은 무슨 고생을 한 걸까.
“나는 18년 동안 똥 닦기였고, 자기는 18년 동안 똥을 뚫었네. ”
우리는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나만 힘든지 알았다. 남편이 그런 ‘똥 고생’을 하고 있는 줄 생각도 못 했다. 나는 하수구 청소를 외면하고, 변기 뚫기를 슬쩍 남편에게 떠넘겼던 것처럼, 남편의 힘듦과 수고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세면대에서 아기들의 똥 묻은 엉덩이를 씻겼던 지난날들이 미안했다.
화장실 귀퉁이에 여전히 처참하게 붙어 있는 머리카락 찌꺼기가 이제는 불만으로 보이지 않았다. 18 년간 배수구를 뚫어 준 남편의 노고를 치하하며 나심 진심을 담아 하수구에서 나온 머리카락 이물질을 치웠다.
남편, 고마워. 앞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머리카락 찌꺼기를 치울게. 늘 뚫어줘서 고마워.
나의 글이 마음으로 남편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내 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기를.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