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칭찬에 눈이 멀어

번외 편> 야밤에 가스레인지 후드 청소

by 눈항아리

가족들 모두 돌아가며 한 번씩 수도꼭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우와! 수도꼭지만 반짝거려. “

회색 일색인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만 광이 난다. 평소와 다른 빛 반사에 모두들 당황하고 신기해하면서도, 엄마가 이번에는 또 왜 그러는가 싶었을 테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동안의 주부로서의 책무, 의무를 거론하지 않고 주부의 게으름을 탓하지 않았다. 자신들도 손끝 하나 건들지 않으니 말을 않는 걸까.


청소와는 거리가 먼 가족 구성원들은 반짝이는 수도꼭지에 반해버렸다. 그런 빛을 만들어낸 나를 우러러보는 게 분명했다. 칭찬을 받으니 마음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철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다는 말은 꾹 눌러 삼켰다. 아무도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모를 거야. 훗훗. 녹물이 줄줄 흐르겠어? 흠집이 났더라도 녹이 슬려면 한참 걸릴 거야. 그러면서 칭찬의 기쁨을 만끽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주부에게는 행동의 원천이 된다. 그리하여 늦은 밤 뜬금없이 가스레인지 후드를 뜯었다. 내 생에 가스레인지 후드를 뜯은 건 정말 손에 꼽힐 정도다. 결혼 18년 동안 여섯 번 이사를 했다. 가스레인지 후드를 누더기로 만들어놓고 나면 이사를 하는 형국이었으니 닦아 쓸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수도꼭지에 광을 냈고, 가족들에게 과정과 상관없는 과한 박수갈채를 받다 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구 샘솟았나 보다. (어째쓰까)


아이들 잠자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뜨거운 물은 공급이 안 되는 상황이다. 내가 주방에서 온수를 틀어 쓰니 온수를 껐냐면서 욕실에서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연산과 찬물에 대충 담근 후드에는 노란 기름이 여전히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실패다. 구연산은 다 썼다. 폭풍 검색 후 베이킹소다 물에 담가놓으라는 글을 봤다. 푹 담갔다. 30분을 담그라는데 마음이 급했다. 꼬마들이 자는 시간이 훨씬 넘었다. 12시가 넘은 시간 아이들을 5분 만에 재우고 다시 싱크대 앞에 섰다. 여유롭게 기다려야 하는데 시간에 쫓기다 보니 계속 솔로 문질렀다. 아픈 팔이 더 아프다. 후드는 왜 오밤중에 뜯어가지고. 모두가 잠든 밤, 나는 조용히 세심하게 박박 솔질을 하고, 온수에 후드를 헹궜다. 그럭저럭 흰색이 섞인 은색 빛이 난다. 조금만 더 베이킹소다 물에 담갔으면 좋았을 텐데...



가스레인지 후드는 청소는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해야 하는 일이다. 5분 안에 할 수 있는 집안일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 공을 들이며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다. 나는 5분~ 10분 안에 할 수 있는 화장실 청소 미션 중이다. 주방에까지 가서 그 야밤에 내가 왜 그랬을까. 섣불리 행동하기 전에 생각부터 하자. 칭찬은 주부를 생각 없이 움직이게도 한다. 매사, 칭찬에 들뜨지 말고 침착하자.



남편이 잠자기 전 나의 브런치 글 <철 수세미와 치약> 글을 읽고선 물었다.

“철 수세미로 문질렀어? ”

“으응.”

마지못해 대답하는 나에게 대뜸 그런다.

“그것도 몰라?”

‘흥이다.’

결국은 수도꼭지를 철 수세미로 문지른 게 들통났다. 자기도 모르는 거 천지면서. 금방 좀 전에도 건조기 몇 분 돌리는지 몰라서 버튼도 못 눌렀으면서.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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