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거울 닦기

by 눈항아리

달복이와 복실이에게 부탁했다.

“거울을 닦아줘. ”

그 거울은 화장실 거울은 아니다.

거실 거울이다.

거울은 거실 책꽂이 모서리 벽에 붙어있다.

내가 20대부터 사용하던 개인 소장품이었다.

참 오랫동안 사용한 튼튼한 거울.

전신은 아니지만 몸 전체를 거의 다 비춰 주며

위아래로 날씬하게 생겼다.


복실이는 물티슈,

달복이는 마른 걸레를 찾아왔다.

복실이가 먼저 닦고

달복이가 나중에 마무리로 닦았다.

그러곤 설거지하는 나를 자꾸 부른다.

귀찮게스리...

그런데 부른 이유가 있었다.

거울이 반짝인다.

화장실에서 내가 거울을 닦을 땐 안 반짝였는데...


아이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나는 화장실 거울을 닦았다.

물티슈로 닦고 마른 걸레로 닦았다.

그런데 화장실 거울은 반짝이지 않는다.

안 닦는 것보다는 나으나

물때가 그냥 남아있다.



그런데 이 물때라는 것이 이상한 녀석이다.

물이 자국이 되어 표면에 엉겨 붙어 있다.

분명 이것을 떼어 주려면 강력한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 같다.

(ㅋㅋㅋ )또다시 철 수세미?

그런데 왠지 거울은 철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면

당장 유리에 금이 갈 것만 같다.



그리하여 거울을 다 닦고 찾아본

유리 닦는 방법.

유리 세정제를 쓰란다. 하하.

그건 나도 아는데.

유리 세정제는 또 다른 세제다.

우리 집에는 없는 또 다른 세제.

사러 가야 할까?

장비를 갖추는 건 생각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이상한 마음이다.



그런데 당장 집에서 쓸 수 있는 세제는 없을까?

어느 누구는 샴푸로 문질렀다,

어느 누구는 식초와 물을 1:1로 섞어서 분사하라고 한다.

샴푸로 문지르고 물을 뿌리려면 욕실이 다 젖는다.

샤워 후 해 볼 방법!

식초 물을 한 번 사용해 보고 싶은데...

주방에 식초가 없다.

없는 것투성이 군.

식초도 하나 사 와야겠다.

어째 청소보다 준비물 사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같은 느낌.


오늘의 청소는 이쯤에서 접기로 마음먹고

빨래를 꺼내러 세탁실로 가는데

세탁 세제 옆에 서 있는 식초를 발견했다.

나는 식초를 왜 베란다 세탁기 옆에 두었을까.

한참 전 세탁조 청소를 한다고 들이부었던 기억이...가물가물하다.

빛 바랜 식초, 얼마나 오랫동안 태양볕을 보며

선룸 같은 베란다 빨래방에 거하였는지 모르겠다.

역시나 먹기는 좀 그렇고

주방에 하나 구비해야겠다.


퇴근 후에는 식초물을 타서

분무기에 넣어

칙칙 뿌려봐야겠다.


주방과 세탁실과 욕실을 넘나들며 사용되는 식초,

과연 효과가 있을까.

과연 거울의 물때를 없애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울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답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 내가 고른다.

최선의 선택이 아닐지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

우여곡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내가 살림을 해가는 방법이다.



그러다 마지막엔 그럴지도 모른다.

그냥 처음부터 유리 세정제 살걸.

나도 그걸 안다.

그냥 유리 세정제 살까...

또 사놨다가 어디 구석에 처박혀버릴까 봐.

꾸준하지 못할 내가 못 미덥다.

버려지고 잊힐 유리 세정제가 아까워서 그렇다.


식초를 사든 안 사든,

세정제를 사든 안 사든,

저녁에는 다시 유리를 닦아보자.



유리를 닦으며

마른 걸레로 수로 꼭지도 닦았다.

매일 닦으니 더욱 광택이 나는 것 같다.

유리는 아직 얼룩져 있지만

수도꼭지가 반짝여서 괜찮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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