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거울아 거울아 1

by 눈항아리

퇴근 후 거울 닦기, 약속은 지킨다.

식초도 유리 세정제도 그 무엇도 안 사 왔다.

괜찮다. 삶을 어떻게 모두 계획적으로 산단 말인가.

무엇이든 집어 닦으면 된다.

즉흥적인 판단이

나를 성공의 길로 이끌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의 가능성 또한

가지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기응변의 끝판왕,

오늘의 거울 닦기를 소개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나는 막무가내 청소를 선보인다.


관객은 복실 양.

대부분 내가 5~10분 짧은 욕실 청소를 하는 동안은

복실이가 씻는 시간이다.

복실이는 청소하는 내 옆에서, 열심히

관객의 의무를 다하며 씻는다.



화장실 거울 닦기 첫 번째 선택은 물티슈다.

이 물티슈로 말할 것 같으면, 산 넘고 물 건너 온 것은 아니고,

다*소 표다. 물 건너 온 것이 맞나?

인덕션,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오븐 등

다양한 주방기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화장실 청소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장비를 구입하러 가서

왜 나는 ‘주방’글자만 잔뜩 들어있는 물티슈를 샀을까.

‘욕실’, ‘화장실’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주방용 클리너’는 기름때, 찌든 때를

스크래치 없이 깨끗하게 없애준단다.

그런데 어디 주방에만 사용하라는 법이 있을까,

욕실에도 찌든 때가 천지다.

그리하여 물티슈 캡을 개봉하기에 이르렀다.



한 봉에 2000원 60매.

한 장에 33.3원짜리 물티슈 두 장을 쏙쏙 뽑았다.

간편청소 시작.

바로 거울을 닦는다.

깨끗해진다.

밝아진다.

복실이가 우와! 한다.

그런데 마른 걸레로 닦고 나니 물때 자국이 그냥 남아있다.

주방에만 사용해야 하는 건가?

기름때, 찌든 때는 강력 세정해 주지만

묵은 때는 못 없애주는가 보았다.



그러나 가장 간편한 물티슈 청소로 끝낼 내가 아니다.

2차 시도.

묵은 때를 말끔히 없애주는

연마의 천재가 눈에 보인다.

왼손을 뻗어 치약을 들었다.

거울에 쭉 짰다.

하얀 치약은 찰진 새똥처럼 거울에 철썩 달라 붙었다.

청소용 칫솔에 물을 묻혀 문질렀다.

흐르지 않도록 표면에 착 달라붙도록

그러나 거품을 머금도록 박박 물 질렀다.

강력한 치약의 향이 온 욕실에 향기롭게 퍼졌다.


엄마! 살살 문질러!

관객의 요구에도 그저 박박 문질렀다.

작은 칫솔모로 커다란 거울 닦기 위해

팔을 있는 힘껏 저었다.

칫솔모의 물기가 금방 말라

틈틈이 물을 적셔가며 꼼꼼히 닦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문질렀으나

그 공이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묵은 때, 그것이 문제였다.


이제 그만할까?

거울을 등지며 반짝이는 수도꼭지를 마른 걸레로 한 번 더 닦았다.

나의 태양 수도꼭지가 빛을 내며

힘내라고 말해줬다.

그래, 매일 닦으면 없어질 거야.

내일도 해보는 거야.


내일 했어야 했다.

복실이는 아직 씻는 중이었고

나는 힘이 남아 있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소매를 걷어붙이면 어디 그만 두기가 쉬운가.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고대하던 세정제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유리 세정제는 안 사 왔으니

천연 세정제를 만들자.

베란다에서 오랫동안 햇볕에 숙성된 식초를 가져왔다.

유통기한이 1년이나 남은 식초다.

과연 그것을 먹을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지만

청소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분무기에 식초 1, 물 1을 넣었다.

이렇게 쉽다니!

유리 거울에 칙칙 뿌렸다.


엄마! 이거 무슨 냄새야?

엄마! 우리 집에서 중국집 냄새가 나!


식초를 벽면 유리 전체에 뿌려대니 그 양이 상당하였다.

아니면 ‘태양볕 천연 숙성 식초’라 그런지도 몰랐다.

복실이가 씻으며 코를 틀어막았다.

나는 코를 막지도 못하고

재빨리 거울을 닦아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광을 내듯 문질러가며 몇 번이고 닦아냈다.

그런데 아무리 닦아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분무기는 주방으로 퇴출되었다.

남은 식초 물은 어쩐다...

그것이 아까워 싱크대 개수대에 골고루 구석구석 뿌렸다.

살균 세척이 되겠지?

욕실은 때를 불릴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했지만

주방은 기다려줄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욕실 거울 청소 중이었기 때문이다.

온 집안 퍼진 강력한 식초 향에 아이들이 모두 난리가 났다.

왜 주방에까지 식초 물을 부어서

이 야밤에 이 난리 지경을 만들었단 말인가.



이미 팔은 후들후들이었다.

아픈 팔이 더욱 쑤셔왔다.

아픈 팔은 왼팔, 닦은 팔은 오른팔인데도

온 팔이 다 아팠다.

적당히 할 것이지 왜 나는 고생을 사서 하는가.

삶이 나를 굴리는 게 아니라 내 어리석음이

나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식초 냄새가 이렇게 심할 줄 난들 알았나.

숙성 식초의 위력을 미리 예상하지 못한

나의 판단 착오였다.

아주 작은 실수.



거울 닦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멈추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시상이 저절로 떠오르네.

이건 누구의 시였더라.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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