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거울아 거울아 2

by 눈항아리

시큼한 내 풍기는 거울에 물을 뿌리고 닦아냈다.

거기서 그만 멈춰야 했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법인데...


콧속을 찌르는 곰삭은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냄새가 날아가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환풍기는 계속 돌아가고 있으나

과연 거울 표면에 착 달라붙은

식초의 쉰내까지 날려 보내기 위해 나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더구나 생각 없는 내 손이

주방 싱크대 개수대까지 찾아가

칙칙 식초를 뿌려댔으니

온 집안에 식초 향이 안 풍기는 곳이 없었다.

다 큰 어린이들의 호흡기 건강이

아주 약간 걱정되는 상황.

나는 다시 수세미를 들었다.



수세미까지 가져올 필요도 없었다.

세제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막무가내로, 보이는 대로, 잡히는 대로,

샤워타월에 보디워시를 묻혀 슥슥 거울을 닦았다.

거품이 아주 끝내줬다.

보글거리는 거품과 함께

풍부한 보디워시 향과 함께

숙성된 식초 냄새는 날아갔다.

보디워시 향이 너무 강해서

쉰내를 다 덮어버린 건지도 몰랐다.


거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음~ 향기로운 보디~샤워~ 거울 샤워~

그러다 쾅!

나의 높다란 뾰족 코가 거울에 도장을 찍었다.

반짝일 뻔한 거울에 콧기름 도장이 선명했다.

괜히 얼룩만 더 냈다.

이런 사고뭉치 같으니.


코까지 들이대고 냄새를 맡으며 들여다본 거울에는

여전히 물 자국이 선명했다.

강철 거울인가.

강직하고 굳세고 꿋꿋한 기상의

묵은 때를 우러러보며

나는 결심했다.

저것을 지우리라, 꺾으리라,

제거하리라, 처단하리라!



그리하여 어느 구석에서 찾아온 매직블럭.

그것은 거울에 찰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묵은 땟자국을 없애버릴

최적의 도구 같았다.

엄지와 검지 두 개의 손가락으로 가뿐히 들 수 있는

미니 사이즈의 블럭을 중지까지 가세해 꽉 쥐었다.

물을 묻혀서 거울을 문질렀다.

슥슥 동글동글 문지르고,

박박 위아래로 문대다,

쓱쓱 가볍게 문지르고,

북북 와이퍼처럼 옆으로 마구 문댔다.

매직 블럭이 금세 작아졌다.

지우개로 연필 글씨를 지우면 닳아 없어지는 것처럼

매직블럭은 제 한 몸 희생하여

묵은 땟자국을 없애려는가 보았다.

없어졌을까?

마른 걸레로 말끔히 닦았으나

뭔가 얼룩덜룩 이상하다.

매직블럭이 마법 같지 않다.



너무 작은 블럭으로 문질러서 그런가?

물을 적신 커다란 수건으로 거울을 삼 등분으로 나눠

재빠르게 그러나 힘을 꽉 줘서 닦아냈다.

매직블럭이 만들지 못한 마법을 수건이 창조해냈다.

수건이 지나간 자리마다

더 오래된 더더 묵은

5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쌓이고 쌓인

케케묵은 물때가 모습을 드러냈다.

희끄무레하고 아른아른하는

부정형의 하얀 물꽃이 마구 피어났다.

거울 전면이 뿌옇게 되어 하나도 안 보였다.


거울은 그동안 차마 꺼내지 못한

말라붙은 눈물 같은 감정을 다 토해냈다.

켜켜이 쌓여 있던 거울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안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괜히 아픈 구석을 들쑤신 것 같아 미안했다.



엄마! 왜 그러는 거야? 거울이 안 보이잖아.

복실이가 소리쳤다.

잘했을 때는 한 마디도 않더니

거울이 희뿌옇게 안 보이자 대뜸 반응을 보이는 아이.

그렇다. 잘하면 티가 나지 않지만,

못하면 확 티가 나는 게 세상 일이다.

잘 좀 하자, 거울아.



아이와 나의 질책에 거울은 금세 정신을 차렸다.

거울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지난 세월 묵은 응어리를 안개로 감싸 빛 속에 품어 버렸다.

거울은 잠시 후 다시 본래의 은빛으로 반짝였다.

작고 미세한 세월의 묵은 얼룩을 여전히 간직한 채였다.



시간 속에 눌어붙은 물의 흔적을

하루 이틀 만에 없애려 한

내 욕심이 과했는지도 모른다.

매일 생기는 물때는 묵히지 말고

매일 정성 들여 조금씩 부드럽게 닦아내자.




배운 점!

식초는 냄새가 심하다.

보습효과가 있는 보디워시는 오히려 얼룩이 생길 수 있다.

매직블럭은 아무 데나 마구 문지르면 안 된다.

매직블럭은 사포처럼 긁어내며 때를 없앤다. 표면을 손상시킬 수 있다.

오래된 물 자국을 없애려면 세정제를 바른 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거울은 마른 상태로 유지한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물의 흔적이

거울 귀퉁이 어디엔가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다.



욕실 거울이 쓸데없이 너무 큰 건 아닌가 생각되었다.

팔이 욱신거린다.

청소는 몸에 무리가 되지 않게 적당히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월에 켜켜이 쌓인 물의 얼룩이

분분한 낙화가 되는 그날까지

나의 거울 닦기는 계속된다.

그만 좀 떨어져라.

거울이 뚝 떨어지면 안 되는데...

거울아 거울아.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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