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가게의 수도꼭지는 10년이 넘었는데도 반짝인다.
생각해 보니 가게 화장실의 수도꼭지는 그동안 내가 매일 닦았다.
퇴근 전에 못 닦으면 아침 출근해서라도,
마른 천을 못 쥐면 손 닦는 핸드타월이라도 쥐고 닦았다.
은연중에 나는 수도꼭지가 깨끗하면
화장실이 깨끗하게 보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울은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다.
남편은 거울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는 게 거울이라나?
화장실에 들어서서 사람들이 가장 눈여겨보는 것이 수도꼭지 아닌가?
아무튼 가게 거울은 남편이 매일 닦는다.
집의 거울은 안 닦아도 가게 화장실에 있는 거울은 매일 닦는다.
나도 남편도 집보다 가게 화장실을 더 좋아하는 걸까.
가게는 일터니까, 의무로 하는 것 같다.
먹고살아야 하니까.
우리 부부의 찰떡궁합으로 우리 가게 화장실은 다행히 깨끗하다는 평을 듣는 것 같다.
집은?
왜 집은 그러지 못하는지.
역시 감시자의 눈이 필요한 것일까.
손님을 초대하는 것과 같은 외부의 압력이나 눈길 같은 장치가 필요한 것일까.
집과 가게를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한 나는
가게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내가 매일 마른 것으로 닦고 있어서 빛이 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게 화장실의 거울 또한 남편이 매일 뭔가로 닦아서 빛이 난다는 사실을 몰랐다.
집 화장실 청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불현듯 내가 광내고 있었던 가게 화장실 수전이 생각난 것이다.
그래, 매일 닦으면 10년, 20년 빛나게 쓸 수 있다.
10년, 20년이 뭔가 평생을 빛나게 쓰고 대물림을 해줄 수 있을지도.
높은 기상, 빛나는 나의 의지의 표현으로 나는 마른 천을 높이 들었다.
욕실을 사용한 후에는 늘 마른 천을 들고 거울과 수도꼭지를 닦는다.
세면대도 물기 없이 말끔하게 닦는다.
어느 날은 한쪽 벽면, 어느 날은 욕실 문,
샤워기 반대편 벽면에 있는 수납장의 문짝도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욕실 벽에 흐르는 물은 스퀴지로 빠르게 휙휙 없애기도 한다.
그래도 마른 천으로 닦는 것만큼 개운하지는 않다.
수도꼭지가 물때가 앉아 빛을 잃어가는 것처럼
문에 물이 튀어 흔적을 남기는 건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일 같다.
화장실 관리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오랜 세월의 영향으로
문 아래쪽은 곰팡이가 생겼고, 수납장 문짝은 매끄러운 빛을 잃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문에 물을 뿌리거나, 수납장에 물을 뿌리는 것도 아닌데
왜 물이 튀는 걸까?
수전과 가장 먼 쪽 벽에 있는 것이 문인데,
욕실이 작기는 하지만 일부러 물을 뿌리지 않는 이상
그곳까지 물이 튈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은데...
문 아래쪽 귀퉁이는 늘 물이 튀어 있다.
가족 구성원들 중 누군가 샤워기로 총싸움을 하는 건가?
수납장은 일부러 물을 뿌리지 않아도 안개비가 맺히는 것처럼
욕실을 사용한 후에는 뿌옇게 되는 걸 봤다.
문도 수납장 문처럼 안개비나 이슬 같은 것이 맺히는 걸까.
무슨 이유에서 생성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모든 물기를 닦아낸다.
튀는 물,
주르르 흘러 떨어지지 않고 표면에 남은 물,
공기 중으로 날아가지 못한 마르지 않은 물기,
그것이 무엇이든 물의 흔적이란 흔적은 모두 닦아낸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가족 여섯 명이서 돌아가며 쓰는 욕실이라 물기 마를 새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욕실 문 앞에 지키고 섰다가 가족들이 욕실 사용을 마치고 나오면
쪼르르 들어가 물기를 닦고 오는 걸까?
설마.
하루에 한 번 내가 사용할 때 딱 한 번, 내 마음이 내킬 때 닦는다.
집의 욕실도 닦기 시작했으니 곧 성과가 보일 것이다.
집에서도 가장 먼저 빛나는 건 역시나 가장 공을 들인 수도꼭지다.
수도꼭지와 거울은 매일 닦는다.
거울은 나의 설레발로 코팅이 벗겨졌는지 희미한 빛을 띤다.
그런데 수도꼭지는 광이 번쩍인다.
수도꼭지는 세면대와는 또 다르다.
세면대는 닦아도 닦은 것 같지 않은데 수도꼭지의 은빛 광택은 일할 맛이 나게 해 준다.
조용히 맡은 일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성과가 빛나도록 매일 알리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도꼭지는 나의 성과를 가족들에게 매일 알리고 있다.
세면대에 선 모든 가족들은 눈으로 콕 수도꼭지 사진을 찍고 온다.
차도남의 대명사 우리 둘째 아들에게 칭찬의 말까지 들었으니
나의 기상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물때는 물이 만든다.
물때는 물이 남긴 발자국이다.
물은 흔적을 남긴다.
물이 일부러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건 아니겠지만.. 또 모른다.
물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지도.
나는 정성을 들여 그 흔적을 지우려 한다.
물을 없애고 그 자리에 내 힘을 과시하며 반짝이는 빛을 입힌다.
그러나 굳이 빛을 발하지 않아도 제거의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니다.
물의 흔적을 없애고 나면 나의 흔적이 나의 일상 곳곳에 남기 때문이다.
물의 흔적을 지우는 일은 좀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달에서 찾은 물의 흔적은 혁신적인 발견이 되기도 하는데,
우리 집 화장실에서 찾은 물의 흔적은 내 적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침의 수도꼭지 위에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물방울은 밤새 날아가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고 수도꼭지를 꼭 붙잡고 악착같이 매달려 있었다.
작은 물방울이 모이고 모여 저희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기 위해 뭉쳤는지도 모르겠다.
두 손으로 마른 천을 모아 잡고 싹싹 수도꼭지를 문질렀다.
위, 아래, 뒤쪽, 앞쪽 꼼꼼히 물기를 닦아냈다.
물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의 흔적이 수도꼭지에 덧입혀졌다.
잠시 동안.
거울에도 나의 흔적을 남긴다.
벽과 바닥, 문과 욕실 수납장 문, 또 다른 수도꼭지...
나는 다른 존재의 흔적을 지우고 나의 흔적을 대신 남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영웅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하루 만에 지워질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물과 겨루고 있다.
물도 오랜 시간에 걸쳐 그 흔적을 깊게 만들어 남기듯
나의 노력이, 나의 발자국이, 나의 흔적이 묵직하게 남겨지기를 바란다.
나의 욕실에, 나의 화장실에, 나의 집에, 나의 삶에...
그리고
빛나는 내 삶을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야, 빛나는 내 삶을 물려받았더라도, 수도꼭지가 녹이 슬면 꼭 바꿔서 쓰기를 바란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