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쉽게 욕실화 빨기, 닦기, 씻기

과탄산+김장 봉투

by 눈항아리

청소는 끝이 없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 생이 끝나야 끝이 난다. 참 슬픈 현실이다. 여기를 닦으면 저기가 눈에 밟히고 저기를 닦으면 그새 여기가 또 더러워져 있는 현실. 그런 혼란한 상황 속 기가 막히는 현실 속에 내가 서 있다.


청소는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 더욱이 나는 바쁘시고 귀하신 몸이니까, 아이 넷, 주 6일 출근자이니까 몸을 사리면서 해야 한다.


팔이 안 아프면 더 열심히 박박 바닥까지 문지르고, 벽면을 벌써 다 닦고, 줄눈을 틈새 솔로 문지르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 구성원의 하나로서, 다음 날 일할 힘을 내 팔에 남겨둬야 한다. 며칠 화장실 청소를 하다 된통 구르고 이제는 설렁설렁할 핑계를 이리저리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일 안 하는 전업주부, 아이 없는 주부는 그런 핑계를 만들 수 없느냐? 절대 아니다. 누구나 설렁설렁의 이유를 100개 정도는 만들 수 있다. 힘을 비축해서 내일을 대비하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이리저리 궁리 끝에 3분도 안 걸리는 화장실 청소를 골랐다. 손으로 문지르지 않아도 되니 팔도 안 아프다. 솔, 수세미 등은 필요가 없다. 준비물은 김장봉투, 세숫대야, 뜨거운 물, 과탄산소다 반 컵. 오늘은 매일 새롭게 더러움을 묻혀오는 욕실화, 애증의 욕실화를 씻고, 빨고, 닦는다. 그러나 나는 욕실화에 손 하나 까딱 안 할 테다. 내 손과 팔의 안위를 위해 오늘은 편하게 가기로 했다. ‘잔머리 대마왕’, ‘꼼수의 여왕’을 나는 너무 사랑한다.


실행.

1.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인다. 몇 리터인지 모른다. 그걸 일일이 다 기억하고 찾아보기에는 나는 귀차니즘의 천재다. 물은 뜨거운 물과 찬물 반반이니, 세숫대야가 넘치지 않을 정도의 물 양이면 되겠다. 뜨거운 물은 그 반이니 적당한 양을 대중해서 끓이시길.

2. 포트에 물을 끓이는 동안 과탄산소다를 종이컵 반 컵을 퍼서 대야 위 김장 봉투 안에 넣는다.

3. 김장봉투 안에 찬물을 뜨거운 물의 양만큼 넣는다.

4. 끓는 물을 김장봉투에 붓는다.

5. 김장봉투를 잘 묶는다. 공기를 최대한 뺀다.

6. 욕실은 좁으므로 베란다로 옮겼다. 과탄산에서 이상한 기체가 스멀스멀 올라올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7. 잘 묶은 김장봉투 위에 무거운 세제 하나를 올렸다. 하나를 올리니 다른 곳이 불룩 솟아 오라 욕실화가 물 위로 튀어 오른다. 과탄산소다 따뜻한 물속에 잠긴 욕실화를 잠기게 해야 한다. 욕실화는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숨구멍을 찾아 자꾸 물 위로 올라온다. 욕실화가 물보다 가벼워 둥둥 뜨는 것이므로 절대 놀라지 말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야 한다. 나는 중성세제 통 하나와 리필용 액체 세제 하나, 이렇게 두 개를 눕혀서 지그시 눌러 놓았다.

8. 하룻밤 재운다. 하룻밤 재웠더니 세숫대야로 물이 다 샜다. 대야에 김장 봉투를 넣기를 잘했다.

9. 아침에 일어나 고무장갑을 우선 낀다. 신발을 세척한다. 뜨거운 물로 과탄산을 싹 씻겨 내려가게 했다. 뽀득뽀득하다. 하얗다. 하얀 욕실화가 하얀 건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 깨끗하게 쉽게 욕실화를 닦은 건 처음이다. 내일도 하나 더 해야지.

10. 김장 봉투 안쪽과 바깥쪽을 뒤집어가며 물로 헹궈내고 물이 잘 빠지게 널어놨다. 물이 새지만 몇 번은 재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앗차!

글을 다 쓰고 다시 보니 욕실화를 안 넣었다. 적당히 아무 때 김장 봉투를 묶기 전에 넣으시길. 욕실화를 안 넣으면 욕실화를 닦고, 씻고, 빨 수 없다.



아무도 욕실화를 보고 감탄하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다. 내가 욕실화를 빛냈다는 사실을. 그저 욕실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아무 생각 없이 발에 신발을 끼워 신고 세면대로 향하는 가족들. 그 욕실화에 물이 묻었는지 안 묻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물이 묻었으면 양말을 벗는 일이 좀 귀찮을 뿐이다.


욕실화 빨기, 티 안 나는 집안일을 했다. 적은 시간, 작은 노력을 들여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은 기쁨에 들떠 있다. 이런 쉬운 일을 왜 그동안 피하기만 했을까.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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