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실내에는 욕실 하나, 화장실 하나가 있다. 모두 화장실이라 부르거나 모두 욕실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욕실에는 세면대와 샤워기가 있다. 변기는 없다. 변기는 화장실에 있다. 화장실에는 세면대는 없고 샤워기가 있다.
욕실을 쓰면서 때로 변기의 존재가 아쉽다. 화장실을 쓰면서 세면대의 존재가 늘 절실하다. 가볍게 손을 씻기 위해 바닥에 콸콸 물을 뿌려대야 하기 때문이다. 세숫대야를 씻기 싫어서 화장실 바닥에 대야 하나조차 안 놓았다. 다리에 물이 튀는 것이 싫은 사람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을 씻기 위해 욕실 세면대로 이동한다. 열 걸음은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다.
오늘은 그동안 열심히 닦고 광내던 욕실을 벗어나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 청소 물품을 사면서 가장 먼저 고심하여 고른 무기는 변기 솔이다. 천 원짜리를 살 것인가, 거치대가 있는 것으로 살 것인가, 일회용으로 살 것인가 얼마나 심사숙고했던가. 청소 물품 봉지는 청소 도구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책상 자리 내 옆에 놓았다. 정리를 해서 수납장에 넣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어디 구석에 들어가면 절대 꺼내서 안 쓸 것 같아 매일 열어볼 수 있도록 내 옆에 놓은 것이다. 핑크색 청소 도구 봉지와 나는 나란히 앉아, 나는 책을 보고 핑크 봉지는 천장으로 가로막힌 하늘을 올려다본다. 안에 든 것을 내가 뒤적일 때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심심할 때 자주 뒤적여 본다. 물끄러미 보면서 뭘 들고 어디를 청소를 할까 생각한다.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는 건 꽤나 흥미로운 사건이다. 이상한 취미 생활이다. 청소용품 봉지 뒤지기.
오늘의 재미 찾기,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 내 기준에서 가격이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했던 제품이 있다. 마음에 드는 친구를 사귈 때처럼 한동안 바라만 보던 그것은 개당 500원 정도에 구입한 변기 청소용 일회용 솔이다. ‘변기 청소 한 번에 500원을 투자한다고? 그냥 집에 있는 솔로 쓱쓱 자주 문지르면 되는데, 너무 낭비가 심한 거 아닐까.’생각하며 리필 4개가 든 것을 집어 들었다 슬쩍 내려놓았다. 대신 본체와 리필 2개가 든 것을 2000원에 구입했다. 파란 세제가 잔뜩 묻어 있는 거칠고 탄탄하면서 부피감이 꽤 있는 수세미다. 딸아이는 그걸 보고 물고기 모양 같다고 했다.
변기는 더러움의 결정체라고 할만하다. 아무리 큰마음을 먹고 고무장갑으로 무장을 해도 변기통에 손을 집어넣기는 아무래도 꺼려진다. 그런데 변기 솔은 길어서 걱정이 없다. 드디어 개봉한 수세미를 핸들에 끼웠다. 나의 긴 팔과 깨끗한 손을 보호하기 위해 안성맞춤으로 탄생한 길쭉하고 늘씬한 변기 솔 핸들의 맨 끝을 잡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수세미를 변기에 넣었다.
‘어머나! 파란 물이 쏟아진다. 파란 잉크가 터진 건가? 이거 뭐 잘못된 거 아닐까.’
파랑으로 흐르는 물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설렁 설렁 문질렀다. 파랑 물로 가려진 변기의 가장 깊은 계곡의 끝까지 솔을 넣어 문댔다. 속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과감하게 문질렀다. 꺼려지는 마음, 미루고 싶은 마음, 다가가고 싶지 않은 내 지심을 대신해 주는 변기 솔. 변기 솔에게 기대어 빠르게 변기 내부 청소를 마치고 물을 내렸다. 변기 솔은 진정 고마운 물건이다.
3분도 안 되어 변기 속이 하얗게 되었다. 세상에나! 이런 바짝이는 하얀색의 변기 내부는 처음일세. 아니 변기를 고르러 갔을 때 봤던가? 우리 집 변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더러운 변기를 쓰고 있었던 것일까. 변기의 전과 후를 찍어 보여주기도 민망하고 참. 500원이 전혀 안 아깝다. 제품 후기가 너무 많아서 긴가민가 했는데, 다들 찬양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쓰고 뒤처리가 문제였다.
파란 물이 빠져 하얗게 변한 물고기 수세미를 변기에서 건졌다. 하수구로 가져가서 물을 뿌려댔다. 뿌려지는 물과 튀는 물에 모두 오물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을 버려 말아. 500원씩이나 되는데 한 번 더 쓸까? 그러기에는 구멍이 너무 많은데 더러운 것이 구멍으로 쏙쏙 들어가 덕지덕지 붙었을 텐데... ’ 물로 샤워시킨다고 그것이 떨어질까. 물을 뿌리다 말고 마음을 정했다. 파란 세제가 다 빠져버린 허연 형체만 남은 수세미를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500원이 하나도 안 아까우니까, 버리자.
이제부터 ‘파란 물고기 일회용 변기 솔’이라는 청소 도구는 나의 강력한 지원군이고 강력한 무기이고 강철 갑옷이다. 리필을 잔뜩 사야지. 든든한 친구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변기 솔의 찬사를 늘어놓으니 베스트 프렌드 같다고 했다. 그런데 왜 ‘절친’을 한 번 쓰고 쓰레기통에 버렸냐며 웃었다. 나는 쓸모가 없으면 버리는 냉정한 사람인가...
(친구를 버리고 ) 변기 솔 리필을 사기 위해 인터넷을 열어 검색했다. 그런데 500원짜리 변기 솔 보다 더 비싸고 좋은 친구가 있었다. 심지어 번거롭게 다 쓰고 나서 손으로 집을 필요도 없었다. 떼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아도 되는, 내 손의 불결함을 완벽하게 덜어주는, 화장실 변기에 사용한 수세미를 바로 버리고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는 신기한 변기 솔. 마음에 쏙 들었다.
나는 금방 찬사를 늘어놓았던 ‘베스트 프렌드’를 잊었다. 또 고민한다.
새로운 변기 솔에게 나는 또 푹 빠졌다. 그런데 단 하나 핸들을 또 사야 한다는 게 문제다. 기존의 변기 솔과 호환이 되면 좋을 텐데, 회사가 다르다. 생긴 것 자체가 다르다. 또 고민한다. 살까 말까. 이번에는 더 비싸다. 살까 말까. 청소기 청소용품의 세계는 치열한 전쟁터다. 내가 그걸 부추기고 있는 소비자, 사용자라 생각하니 아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청소의 세계는 박박 문지르고 힘만 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돈이 좌우하는 세계였다. 돈이 있는 자가 편리하게 청소하는 세계. 돈이 없으면 멋진 친구도 못 만드는 세상이다.
친구를 버릴 것인가... 고민 중이다. 아니, 이미 버렸군. 하나 남긴 했다. 그것을 마저 쓰고 핸들마저 저버릴 것인가...
변기 청소의 신세계라 생각했던 것이 금세 구식으로 바뀌었다. 편리한 것이 금방 불편함으로 바뀌었다. 더 새로운 편리가 새로운 불편함을 낳았다. 청소 도구의 세상은 치열하다. 심지어 새로 나온 ‘버리는 변기 솔’은 브랜드도 여러 개다.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난감하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