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빛나지 않는 것에 대하여

by 눈항아리

달복이가 물었다.


“엄마, 왜 수도꼭지 청소만 해?”


“수도꼭지만 청소하는 거 아니거든?”


나는 이곳저곳 보이는 대로 구석구석 다 닦는데… 아이의 눈에는 반짝거리는 것만 청소하는 걸로 보이는가 보다.


“엄마, 이쪽 샤워기 수도꼭지도 닦아 봐. 문 손잡이는 닦아 봤어?”


아이는 은색빛, 금색빛, 금속의 빛나는 것은 죄다 들이대며 나에게 청소의 유무를 묻는다. 샤워기 쪽은 가끔 닦는다. 문은 며칠 전에도 물기를 닦았고, 어제도 청소했다. 광이 안 나는 게 문제일까. 문 손잡이는 닦을 생각조차 안 해봤다. 문 손잡이도 닦아야 하는 걸까. 욕실 문 손잡이는? 화장실 문 손잡이는? 집 안의 다른 방문은 거의 모두 손잡이 사용을 안 한다지만, 화장실 문 손잡이는 하루에도 열댓 번 가족들이 손과 닿는다. 팬데믹 동안 가게 문 손잡이에 뿌려대며 청소했던 소독제가 생각났다. 그래, 많은 사람들의 손과 손이 만나 나도 모르게 타인과 악수하게 되는 곳. 문 손잡이도 닦아야겠다.


그런데 무광인 문 손잡이도 광이 나도록 닦아야 할까. 광이 안 나면 어떤가. 애초에 광이 안 나는 걸 닦는다고 반짝이겠는가. 애초에 무광으로 나온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니 애써 광이 안 나는 것을 빛나게 하려고 애쓰지 말자. 그저 깨끗하게 닦으면 된다.


광이 안 나는 어떤 손잡이는 긴 세월 사람들의 무수한 손을 거치며 칠이 벗겨지며 은은한 은색빛 자연스러운 광이 나기도 한다. 그건 손때가 묻었다고 해야 할까. 세월을 건너 은근하게 드러나는 빛도 있는 것이다. 반짝이는 빛에 연연하지 말자. 나는 빛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다. 청소를 하려는 거다.


빛이 나면 더 열심히 닦은 것 같을까. 실제로 나는 빛나면서도 눈에 확 띄는 세면대 수도꼭지 하나를 집중적으로 열심히 닦기는 한다. 반짝반짝 빛이 나니 더 아름다워서, 눈에 확 들어와서, 반짝이는 건 성과물 같아서, 성공의 증표 같아서. 아니면 그건 그냥 우리에게 내재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빛나는 것을 좇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고 빛나지 않는 것의 의미가 없어지거나 닳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다른 존재.


빛나지 않는 것들은 굳이 빛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문에 달려 있는 무광의 손잡이는 불평불만 없이 착실하게 누구의 손이든 잡을 준비가 되어있다. 벽에 착 달라붙어 있는 타일은 묵묵히 물방울을 받아낸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해낼 뿐이다. 빛나지 않는 것이 빛나기 위해 나선다면 온 세상에 빛이 넘쳐나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빛은 빛나지 않는 것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빛난다. 그건 빛이 대단해서도 아니고, 빛나지 않는 것이 모자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빛나지 않는 화장실 문과, 욕실 문을 닦았다. 젖은 것으로 닦고, 마른 천으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 수도꼭지도 마무리 청소로 싹 닦았다. 차별을 하면 안 되니까.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빛나지 않아도 각각의 존재로 특별하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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