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문 청소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 날이다.
쉬는 날에도 해야 할 밀린 집안일이 많다.
할 일이 태산이지만 몸의 상태에 따라 일 양을 조절해야 한다.
특히 정리, 청소와 같은 살림살이는 한번 팔을 걷어붙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된다.
할 일은 무한대로 만들어지고 규모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그런 거대한 계획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릿속을 차지해 손과 발을 움직이기 전에 나의 손발을 묶어야 한다.
한 주 집안일이 밀린다고 집이 망하는 건 아니니까.
안 그럼, 몸이 혹사당하는지도 모르고 하루 쉬는 나를, 나의 시간을 온종일을 집에게 바칠 수도 있다.
집이 잘 굴러가는 것이 중하지만, 먼저 내가 잘 굴러가야 집도 잘 굴릴 수 있다.
나는 일요일만 보람차게 살 것이 아니라 내일도 살아내야 하니까 힘 배분을 잘해야 한다.
하루를 푹 쉬었다.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낮잠도 잤다.
저녁 설거지를 세척기에 돌리고 그제야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면서도 화장실, 욕실에 신경을 못 쓴 것이 생각났다.
오늘은 쉼이 필요한 날이었다고 나를 다독이며 ‘괜찮아’를 반복했다.
쉼이 필요하다고 푹 퍼질 수만은 없다.
물티슈 석 장을 뽑아 들고 화장실 문 가에 섰다.
‘뭐라도 하자.’
도무지 뭘 닦을 힘이 마음도 안 생겼다.
그 자리에 주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화장실 문을 닦았다.
문 하나는 너무 크다.
바닥과 가장 가까운 부분, 본연의 문 색깔과 달리 거뭇하고 꾀죄죄해 보이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닦았다.
문을 열고 화장실에 들어가 뒤쪽도 닦았다.
앞쪽보다 문 뒤쪽, 화장실 안쪽이 더 지저분했다.
세월의 굴곡을 견뎌온 것처럼 문은 군데군데 먼지와 습기를 쌓아 두고 있었다.
물티슈로 먼지를 닦아내고 마른 천으로 물기를 마저 닦았다.
문은 평면이 아니었다.
무늬를 따라가며 꼼꼼히 닦았다.
문에는 위아래로 세로줄의 길고 굵직한 세 줄의 계곡이 있다.
문 전체적으로는 가로로 구불구불한 무늬가 들어가 있다.
손으로 문지르면 문은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가로 물결 주름 사이의 낀 먼지와 찌든 때가 엄청 크게 보였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먼지였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세월의 상처 같았다.
가까이에서 보아야 잘 보이는 법이다.
문을 닦으려고 마음먹지 않았으면 보이지 않았을 문에 붙은 세월의 땟자국이었다.
단단해 보이던 문에게 그런 상처가 있는 줄은 몰랐다.
상처가 아니라, 사실 그건 우리 가족들이 의도치 않게 문에게 던진 오물 덩어리였다.
작은 호의를 가지고 보듬어줄 마음만 먹으면 된다.
오랜 세월 깊은 굴곡 사이에 낀 상처를, 먼지를, 오물을 금방 닦아냈다.
쉼이 필요한 날 나는 물티슈를 사용했다.
단 1분을 투자했다.
내가 무심히 던진 물과
무심코 털어낸 머리카락, 옷에 묻은 먼지가 엉겨 붙은 결과로 만들어진 얼룩을 닦아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상처를 줘서 미안해.”
내 속에서 울리는 작은 목소리를 화장실 문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난날 무심했던 나의 과오를 바로잡듯이 정성 들여 문을 닦았다.
얼른 빨리 1분 만에 문을 닦고, 앞뒤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 문이 그 문 같았다.
가까이 앉아서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걸.
이제는 그마저도 다 닦여 정말 먼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문에도 먼지가 쌓인다는 사실은 놀랍다.
문이 평면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놀랍다.
내가 문을 닦았다는 사실은 더 놀랍다.
1분 만에 청소가 된다는 사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닦아도 티가 안 난다는 사실이 더는 놀랍지 않다.
그건 살림의 진리이니까.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