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는 자전거를 타고 턱걸이와 팔 굽혀 펴기를 한다. 아침 운동을 하기 전에 먹는다며 닭가슴살을 사 달라고 했던 복이. 아들 덕에 닭을 계속 먹고 있다. 닭가슴살을 넣은 샐러드, 닭 안심살을 넣은 샐러드, 큐브 닭가슴살을 넣은 샐러드 등을 먹었다. 냉동으로 된 치킨 가라아게를 오븐에 구워 한입크기로 잘라 샐러드와 함께 주기도 했다. 치킨을 먹은 다음 날이면 튀김 닭을 넣은 진짜 치킨 샐러드를 먹었다. 닭이라는 재료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준비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샐러드를 여전히 먹고 있는 네 명의 아이들은 정말 대단하다. 신기하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야채를 사 대기는 처음이다. 야채를 이렇게 잘 먹는 아이들이었던 건가?
나는 나물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손도 안 대던 음식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손이 갔다. 데쳐서 슴슴하게 간을 하고 참기름, 들기름을 뿌리고 깨소금을 솔솔 뿌려서 질겅질겅 씹어 먹는 나물 반찬이 좋아졌다. 나물 하나, 둘을 반찬으로 올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히 하루를 거르고 이틀을 거르다 보면 ‘아~ 먹고 싶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지렁이처럼 기어 다니곤 한다. 지렁이를 기어가다 기어가다 아지렁이처럼 형태가 없어지고 그러다 사라지고 만다.
쌈채소가 텃밭에서 나올 때는 또 열심히 뜯어서 한 끼 5장씩 뜯어먹기도 했다. 그나마 아이들은 먹지도 않고 남편과 둘이서 열심히 건강을 위해 먹었다. 나이가 드니 야채를 챙겨 먹어야 한다며 부러 열심히 먹었다. 밭에서 마구 솟아나는 걸 안 먹을 수도 없었다. 오이가 나는 계절에는 동글게 썰거나 길쭉하게 썰어서 생으로 먹었다.
요즘은 생 채소가 밭에서 안 난다. 상추도 오이도 없다. 나물은 나만 먹자고 데치기가 귀찮다. 먹지도 않고 버려지면 마음이 아프다. 허구한 날 아이들 식판에 데코로 올려놓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대신 호박, 당근, 파, 양파 등을 푹 끓여서 고기든, 생선이든, 닭이든 뭐든 넣고 한솥요리로 해 먹었다. 야채를 먹지 않지만 국물에 야채의 흔적이라도 묻어 있을 테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했다. 볶음밥, 계란말이, 카레밥, 짜장밥 등은 야채를 먹이기 위한 가장 현명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무엇도 골라내지 않도록 적당한 크기로 썰어, 푹 끓여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잘하고 있다 여겼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야채를 먹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샐러드’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야채를, 풀을, 채소를 염소처럼 씹어먹는 아이들을 보며 과연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힘들게 야채를 위해 투쟁했나 싶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눈곱을 겨우 떼고 밥상에 앉는다. 눈을 게슴츠레 뜬 아이들은 풀을 뜯어먹는다. “나는 채소 같은 건 싫어!”라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야채 그릇 속에 당근도, 파프리카도 들어있다. 아침이 아주 편해졌다. 조리 없이 야채 통 하나씩을 밥상에 올려주고 닭을 데워 한입크기고 썰어 주고, 소스를 뿌려주면 끝이다. 야채는 주로 밤중에 준비한다. 씻어서 물기를 빼고, 썰어서 큰 볼에 담아 살짝 섞는다. 용기를 10개 정도 꺼내 소분해서 담으면 끝이다. 아침을 안 먹는 남편도 점심이나 저녁에 한 통씩 꺼내주면 고기와 같이 먹기도 하고, 밥을 다 먹은 후 먹기도 한다. 소스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풀을 잘도 씹어 먹는다.
요즘 식구들이 한꺼번에 염소나 양 같은 초식동물로 변신한 것 같다. 냉장고에 야채가 떨어지면 샐러드가 없다고 아이들이 찾는다. 아침밥은 안 먹고 치킨 샐러드를 대신 먹겠다고 한다. 요즘은 야채를 사러 대형 마트에 간다. 야채 가격이 싼 마트를 일부러 찾아다닌다.
그동안 나는 왜 아이들의 싱싱한 야채를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왜 아이들에게 샐러드 먹일 생각을 안 해봤을까. 내가 나물 파라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야채를 너무 강조해서 아이들이 안 먹었던 건 아닐까? 내가 야채와 건강의 관계를 은연중에 너무 떠벌린 것일까? 먹는 것을 너무 가르치려 들어서 야채에 선뜻 손이 안 갔던 것일까? 샐러드에 든 야채를 먹이기 위해 ‘샐러드’라는 이름을 쏙 빼고 “야채를 먹어야 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렇게 강요했다면 과연 아이들이 먹었을까? 음식은 강요로 먹일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아이들을 따라서 나도 요즘은 하루 한 통의 샐러드를 먹는다. 내가 평소 소화가 안 된다며 골라내던 파프리카도 다 먹는다. 야채와 샐러드는 정말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점이라고는 닭을 따로 주고, 소스를 조금 뿌려준다는 게 다를 뿐인데... 아주 조금의 소스는 절대적일 수도 있다. 소스를 떨어뜨리면 절대 안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닭이 없어도 풀을 먹을 수 있지만 소스가 없으면 아이들은 ‘샐러드’ 야채 먹기를 포기한다. 소스 없는 ‘샐러드’ 야채는 아이들에게 먹지 못하는 풀로 인식되는 것 같다.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만든다.
우리는 건강을 먹는 게 아니다. 우리 가족들은 요즘 ‘샐러드’를 먹는다. 풀을 먹는... 염소 가족이 분명하다. 풀을 마련하기위해 오늘도 나는 홀로 풀을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어제도 근처 마트에서 풀을 샀다. 6인 가족이 먹는 야채의 양은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