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이 높기도 하다.
어제는 회색 구름이 짙었는데.
짓궂게 땅 아래까지 내려올 것 같은 구름 때문에
기분까지 촥 아래아래로 추락할 것 같았는데.
그 기분을 위로 위로 끌어올리느라
바람을 끌어오고 가끔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데려오고
갖은 애를 썼는데.
비단 기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눈에 비치는 하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늘을 관장하는 누군가가
인간의 기분을 좌지우지하기 위한 수법이 아닐까.
괜히 하늘이 높고 파랗고 흰 구름이 흩날리면
바람 한 점 없어도
기분까지 날아갈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쉽게 속고 판단하고 휩쓸리는 인간.
날씨, 하늘, 색깔,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인간은
한갓 풀숲의 잡초와 다를 바 없는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좋으니 그저 좋다.
바람은 잔잔하고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높고 청명하다.
가을 하늘이 좋은 날
그 하늘을 보며 걷는다.
배추 벌판 끝에는
들판보다 더 넓은 하늘이 늘 펼쳐져 있다.
평소에는 건물 사이에 가려져 있어
머리 위로 고개를 홱 젖혀야 볼 수 있었던 하늘인데,
배추 벌판에서는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늘 하늘을 마주한다.
그 하늘을 향해 걷는다.
배추 밭 지나
작은 과수원 지나
작은 마지기 논을 지나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와 같이 하늘바라기를 하는 섬쑥부쟁이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지려다 다시 피어난 맥문동 보랏빛 꽃에게도 인사했다.
꽃처럼 나도
하늘을 우러러보며 걸어본다.
오늘은 멈추지 말고
하늘까지 오를 기세로
파워를 올려 보겠다며
팔을 휘저으며 걸었다.
아침의 가을 햇살이 얼마나 따사로운지
남쪽을 향해 있는 어깨가 뜨거워졌다.
해님이 굉장한 걸 나만 알까,
며칠 뚱한 구름 하늘 대신
햇살 가득한 하늘을 보려고
도라지 꽃도 하늘바라기를 한다.
순백의 꽃이 얼마나 고귀하게 피었는지
잡초 사이에서 피어나
홀로 여왕처럼 군림하는 듯했다.
그러자 저러나 꽃이 지면 초록 풀이 되는 건 똑같다.
어디 꽃이 지고 나면 도라지 이파리 하나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기를 쓰고 모두 꽃을 피워대려고 하는지도.
“나 여기 있소!”하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지도.
7분 30초를 걷고 돌아가는 지점에서 만난
나팔꽃 한 무더기는
하늘 위로 오른다.
전봇대 옆 철로 된 줄을 타고 하늘까지 올라간다.
그 끝이 어딘지 모르고 그저 오른다.
나팔꽃은 하늘과 함께 걷고 싶은가 보다.
나도 하늘과 함께 걸었다.
하늘과 더불어 더 걷고 싶은 날이었다.
도대체 꽃구경이나 하고
하늘 구경이나 하고
들판 이리저리 구경하느라
걷기는 제대로 걸었는지 원.
그래도 15분 걷고 돌아오는 길
땀이 조금 났다, 아주 조금.
목도 조금 말랐다, 아주 조금.
뱃살도 아주 조금 빠지지 않았을까?
대체 양심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이런 느긋한 산책이라니.
뱃살은 대체 언제 빼냐.
어떻게 사람이 목표를 위해서만 살 수가 있겠는가.
목표를 향해 직진이 아닌 구불구불 돌아돌아
천천히 가고는 있다.
오늘도 걸었다는 게 중요하다.
가을 하늘이 좋아 즐거이 함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