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해지는 언어>시선을 따라 걷다

by 눈항아리

오늘은 파워워킹, 전력을 다해 걷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에 쫓겨 5분 알람을 켜고 걷기 시작했다.

시작 전에 늘 논밭 뷰를 찍는다.

가슴 깊이 들판을 들이마시는 기분으로 후~아~

뻥 뚫리는 이 느낌.

번잡했던 건물들, 빽빽하게 늘어선 도로 위 차들을 뒤로하고

나는 홀로 들판에 섰다.


그런데 이런 느낌 나만 느끼는 게 아닌가 보다.

걷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은 다섯 명이나 보인다.

쭉 일자로 뻗은 2차선 도로 넓이의 농로 끝까지 보며 사람 수를 헤아렸다.

내 눈이 매의 눈이라서가 아니다.

가려지는 것이 없으면 멀리 있는 것이 의외로 잘 보인다.


시선은 옮겨간다.

시선을 따라 생각도 옮겨간다.

새가 포르르 날아 전봇대 쇠붙이에 잠시 앉았다,

다시 날개를 퍼득이며 전깃줄에 앉았다.

까치가 흑백의 날개를 치며 날아간다.

나의 시선에 새가 잡히며 새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드디어 귀가 열린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트럭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가까운 소리에 만족을 못 한 귀는

먼 곳의 소리까지 듣기 위해

소리를 받아들이는 음향 수집 장치의 성능을 순간적으로 높인다.

먼 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의 소리가 들린다.

바닥을 뚫는 공사장 기계음이 땅을 통해 진동을 울리며 전해온다.

풀벌레가 그 진동음을 듣고 내 옆에서 ‘골골 골골’ 한다.

벌레가 우니 바람도 소리를 낸다.

벼 잎사귀를 쓸고 지나가며 ‘사르락사르락’ 들에게 속삭인다.

벼가 자라서 뚱뚱한 마시멜로를 남겼다고 불만이란다.

지푸라기 후우 불어 나불나불 들썩이는 재미가 없단다.



돌아서 가는 길,

서쪽의 높은 산 위에 구름이 피어난다.

산 위에 띄엄띄엄 자라는 하얀 풍차가 돌아간다.

산의 능선에 걸린 풍차는 한 시간 이상 차를 달려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멀리 있는데 시야가 트여 있을 때는 사물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치 앞으로 못 보는 게 사람이라지만

멀리 시선을 두면 한 시간 거리도 볼 수 있다.

얼마나 멀리 바라보느냐에 따라 시간도 거리도 가까워질 수 있다.

시선을 어디로 옮기느냐에 따라 감각이 전하는 소리와 가까워질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늘 묻지.


나는 지금 배를 보고 있다.

뱃살을 빼기로 마음먹고 걷고 있으니 가끔 의무적으로 배를 내려다봐야 한다.

긴 줄에 매달려 달랑거리는 작은 가방.

손바닥 두 개만 한 까만 가방이

내 부른 배 위에서 통통거리고 있다.

나의 시선을 따라간 내 생각의 화살이 뱃살을 콕콕 쪼고 있다.

뱃살아 응답하라.

“꾸르륵”

배가 대답했다.

운동을 했으니 먹을 것을 달란다.

이런 정직한 몸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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