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나. 수영을 할 줄 모르면 물에 들어가 허우적거리다 가라앉을 수도 있다. 준비 없이 물에 뛰어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런 짓을 어젯밤 저질렀다.
준비.... 는 나름 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나 집에 들어온 누구도 내가 준비했다고 생각지 않았다. 다들 웃었다. 얕은 물에서 개헤엄을 치면서 허우적허우적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도와줘.’ 소리가 가슴에서 메아리쳤지만 목구멍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 어설프기만 한 내가, 하루의 마무리를 망쳐버린 나를 보고 가족들 모두 웃었다. 큭큭큭 거리며 웃었다.
문틀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남편에게 한 마디만 하면 마법처럼 이루어질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독립적인 인간이니까, 혼자 하겠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비밀리에 다이소에 두 번 방문했다.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백시멘트와 실리콘을 들었다. 백시멘트는 양이 많아 보였고, 적당한 농도로 만들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실리콘은 찬찬히 보니 도구가 따로 필요해 보였다.
가만히 공구 코너를 살피다 보니 간편한 짜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실리콘이 여러 종류 있었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줄눈에 간편하게 채워 넣기만 하면 되는 제품으로 골랐다. 사진만 봐서는 정말 짜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방수 테이프, 마킹 테이프도 샀다. 준비는 완벽했다. 남편은 아무것도 몰랐다. 집에 먼저 도착한 나는 욕실을 살폈다. 퇴근 후가 욕실의 물기가 가장 적을 때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물론 바로 시행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아침보다는 밤시간, 퇴근 후가 가장 적당해 보였다. 바로 시공에 들어갔다.
먼저 실리콘 입구를 자르고 문지방 틈새에 쭉 짰다. 꾹꾹 눌러 짜면서 틈새 마감을 모두 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투명이라 안 보여서 다행이었다. 잘 짰는지, 잘 붙었는지, 삐뚤삐뚤한지 몰랐다. 그냥 틈새를 메우는 것에 만족하며 신나게 짜댔다.
문제는 줄눈 보수제였다. 사진에는 반짝이는 별빛까지 났는데, 빛은 무슨. 쭉 짜니 쭉 나왔다. 강약 조절이 안 되는 내 손은 직선의 줄눈을 따라가면서 굵기가 일정하지 않는 선을 만들었다. 줄눈 보수제는 틈새를 벗어나 흥건하게 튀어나오고, 빈 틈을 만들고 그저 지나가기도 했다. 문틀의 백시멘트를 채우려고 했던 곳에만 보수제를 짜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한 줄로 만족하지 못한 나는 화장실 바닥으로 눈을 돌렸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두 줄만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조심히 짠 처음 한두 줄은 깔끔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제거하든 비닐을 덮어 말리든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줄을 칠하니 다른 누런 줄눈을 눈감아 줄 수 없었다. 결심했다. 온 밤을 불태우며 줄눈을 채우리라. 마구 짜대고 꾹꾹 짜대고 채워 넣었다. 가끔 덜 마른 물기를 만나 당혹스럽기도 했다. 마른걸레를 가져와 재빨리 닦아내며 열심히 누런 줄을 하얗게 채워 나갔다. 그런데... 줄눈 보수제 통이 텅텅 비었다. 들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짜도 안 나왔다. 맞다, 화장실 전체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한두 줄, 문틀 부분을 보수하려고 사 왔었지. 너무 작은 걸 샀다. 바닥의 3분의 2 정도에 허연 칠을 한 후였다. 어쩔 수 없이 시공을 마무리했다.
거실에서 큭큭 거리던 남편이 말했다.
“그거 24시간 이상 말려야 하는데. 얘들아, 엄마가 바닥에 뭐 칠해놔서 오늘은 욕실 사용 못 해.”
그 말이 왜 내가 사고 쳤다는 말로 들리는지.
그렇게 욕실 점령은 마무리되었다. 문지방에 비닐 테이프를 덮고 욕실 문을 닫았다. 빨리 마르기를 바라며 환풍기를 밤새 틀어 놓고 잤다. 누구도 욕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문지방의 비닐을 뜯었다. 울퉁불퉁 실리콘을 살짝 만지니 들렸다. 잡아당기니 줄을 따라 따라 올라온다. 이런 낭패다. 다시 짤까. 대충 중간에 자르고 들어 올려진 실리콘을 대충 눌러서 틈에 박아놨다. 아직 덜 말라서 그런 걸 거야. 그렇겠지?
줄눈은 마르기 전에 건들지 않기로 했다. 어제 칠하고 스크래퍼 같은 게 있었으면 깔끔하게 긁어냈어야 했다. 너무 많은 양을 짜 넣었더니 넘쳐서 타일에 덕지덕지 하얀 칠이 되어 있었다. 조금 긁어보다 긁어낸 부스러기가 줄눈에 들어가 박혀 같이 굳어버릴까 봐 오늘 밤에 다시 보기로 했다. 나의 시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욕실은 여전히 내가 점령하고 있다. 아직 어수선한 채로. 나는 왜 준비가 덜 된 상태로 생각 없이 욕실에 그냥 뛰어든 것일까.
가끔 집에 셀프 미용실을 차린다. 집에는 머리 자르는데 필요한 도구, 파마와 염색에 필요한 도구들이 모두 있다. 모두 한 번씩 사용하고 절대 건들지 않는 도구들이다. 한 번은 흰머리를 희뿌연 머리로 염색하겠다며 혼자 머리 색을 빼고 염색제를 바르고 감고 쇼를 했다. 머리가 푸석푸석 폭탄을 맞은 것처럼 되었다. 얼룩덜룩한 머리를 이고 부끄럽게도 미용실을 찾았다. 전문가 선생님께 머리를 맡기고 다시는 혼자 머리를 만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전문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가끔 또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고개를 내밀 때면 가위를 들고 아이들 앞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백발백중, 나는 머리를 삐뚤삐뚤 자른다. 아이들은 절대 나에게 머리를 맡기지 않는다.
줄눈 시공도, 실리콘도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을까. 남편에게 해달라고 말이라도 해 볼걸 그랬나...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남편이라고 처음부터 잘 한 건 아니었을 테다. 전문가도 초보 시절이 있었을 테다. 나의 욕실 비밀 작전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한다.
늘 사용하던 욕실을 못 사용한다. 큰 아이는 화장실에서, 둘째는 바깥 욕실에서 씻었다. 꼬마들은 안 씻었다. 나도 화장실은 싫은데... 24시간 이상 말려야 한다니... 그걸 몰랐다는 게 가장 큰 실수다. 욕실은 내가 점령한 게 아니라 줄눈이 보수제와 실리콘이 점령 중이다. 사용 불가.
수영을 못하면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를 준비하면 된다. 다음번에 더욱 준비를 철저히 하자. 곧 추석 연휴인데 욕실을 안 사용하는 날을 노려볼까.
셀프 시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울퉁불퉁한 실리콘 선, 지저분하게 마무리된 줄눈이 주는 허술한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나는 그런 이상한 매력에 또 빠져들 것 같다. 방 곳곳 장판과 몰딩을 사이를 따라가며 직선으로 잘 짜인 마감처리 실리콘에 감탄하며 내 눈은 구석구석을 훑고 있다.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