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눈의 최후
아무런 준비 없이 욕실 바닥의 줄눈을 채웠던 나. 24시간이 지나 그 현장으로 돌아왔다. 욕실 줄눈은 흰색으로 떡칠이 되어 있었다.
넘쳐서 말라붙어버린 흰색 줄눈 보수제를 긁어내야 할 시간이다. 도구가 필요한 시간이다. 주방과 책상을 뒤지며 찾아봐도 긁을 만하게 없다. 손톱으로 긁어보니 조금 긁어졌다. 그렇다고 욕실 바닥 전체를 손톱으로 뜯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플라스틱 조각 하나를 들고 욕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긁었다. 두툼하게 칠해진 부분은 긁어졌다. 그러나 대부분 안 긁어졌다. 화장실의 상태를 보러 온 남편이 ‘쯧쯧’ 혀를 차며 스크레퍼를 가져다줬다. 시범도 보여준다. 그냥 쭉 마무리를 해 주면 좋을 텐데 도구를 나에게 건네주고 퇴장한다. 그래도 적당한 안성맞춤의 도구를 획득했다는 건 행운이었다. 든든한 조력자에게 감사를.
칼날이 달린 스크레퍼로 바닥을 긁었다. 거칠한 바닥 면이 긁혀 나가며 혹여나 날카롭게 벼려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금속과 돌이 마찰하며 쇳소리와 돌의 소리가 엉키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타일과 칼날이 서로 상대의 살을 긁어대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긴 고통의 시간을 지나 줄눈이 차츰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줄눈 옆에는 과거의 흔적, 영광, 상처와 같은 허연 그림자와 같은 자국을 남긴 채였다.
대책 없이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줄눈 보수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욕실은 허연 줄과 누런 줄이 공존하는 대충 어수선한 바닥을 가지게 되었다. 괜찮다. 바닥을 누가 본다고. 아직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다. 욕실 사용을 못 해봐서, 아직 못 봐서 그렇다.
나의 무 대책으로 인하여 욕실 사용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제는 편하게 씻기를. 바닥은 절대 보지 말기를. 누렁과 하양의 대비는 절대 하지 말기를. 그저 준비되지 않은 일의 결과를 조용히 지켜보고 반면교사로 삼기를.
그러나 묵묵히 조용히 가만히 보고만 있을 그들이 아니다. 가족들 누구든 한 마디 이상 할 것을 안다. 입이 달렸으니 말을 하겠지. 그리고 웃겠지? 개중에 한 명은 바닥이 깨끗해졌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을까?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과연 있을 것인지. 그것이 실패일지라도, 엉망진창일지라도, 처참한 결과일지라도.
딸아이의 글라스 데코 피카츄가 책상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삐뚤삐뚤한 까맣게 짜댄 마감 선을 보며 나도 마구 웃었다. 막 웃었다. 깔깔거리며 웃었었다.
아침이 오고 있다. 욕실 문은 열렸다. 가족들의 반응은 궁금하지 않다. 않다. 않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