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바닥이 처참하다

by 눈항아리

실수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허술한 계획 뒤 실행을 했다. 그럭저럭이지만 결과를 얻었다 생각했다.


욕실 바닥 줄눈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나의 기준에서 나름 봐줄만했다.

나름 뿌듯한 밤을 보냈다.

오랜만에 잠도 잘 잤다.

성공적이지는 않았으나 노력의 결실을 얻은 밤이었다.

아픈 왼팔도 그걸 알았는지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나를 재워줬다.

만족스러운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을 맞았다.


아이들이 우르르 식사를 하고 욕실에 몰려들었다.

한 명은 세면대에서 양치질을 하고, 한 명은 머리를 감는다.

한 명은 문 앞에서 대기하며 양치질 중이었다.

북적이는 욕실, 부산한 아침,

투닥거리는 소리, 웃는 소리, 샤워기 물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익숙한 소리 덩어리를 뚫고 둘째 아이가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엄마, 바닥이 이상해요.”

‘바닥이 갈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오버하기는, 녀석, 참.’

설거지하던 바쁜 손을 잠시 쉬고 욕실로 향했다.


바닥이 난리가 났다.

지진이 난 것처럼 바닥이 갈라지고 있었다.

아니, 줄눈 보수제를 바른 줄들이 들려 올라오고 있었다.

화가 치밀고 짜증스러운 기분에 아이들에게 건네는 음성이 딱딱해졌다.

차갑게 욕실화를 신으라고 명령했다.

벗지 말고 꼭 신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소리도 꽥 질렀던 것 같다.

바닥에는 하얀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대책이 시급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줘야 했고 바로 출근을 해야 했다.



종일 욕실 바닥의 하얀 줄눈이 벌떡 일어나 내 눈앞에서 걸어 다녔다.

실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짜증스러웠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 선에서 실패작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나의 완벽한 패배였다.

침울한 하루를 보내며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것인가 고민했다.

실패는 당면한 진실이었다.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실패를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다.

처음으로 되돌려야 했다.

다시 처음처럼...

긁어내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줄눈을 긁어낼 뾰족한 도구를 찾았다.

드라이버 하나를 가게에서 챙겨 가방 속에 넣고 퇴근했다.



드라이버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기가 있을 때는 마구 들어 올려지더니 낮 동안 말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물을 뿌려볼까 생각해 보았지만 배수구로 들어가는 찌꺼기가 또 문제였다.

두리번거리다 새로운 도구를 들었다.

역시나 찾아보거나 정보가 있어서 든 도구는 아니었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대로 손에 집어든 것이다.

작은 어린이용 가위를 들고 욕실 바닥에 앉았다.

그러고 앉아 타일 줄눈 사이를 긁었다.

짜 넣기도 힘들었는데 긁어내는 건 곱절로 힘들었다.


나의 며칠 노력이 하얀 부스러기가 되어 모였다.

그러고도 줄눈 사이와 타일에 미처 긁지 못한 허연 형체의 찌꺼기가 남았다.

기운이 쭉 빠졌다.

허탈했다.

팔이 마구 쑤셨다.

팔도 손목도 내 마음처럼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욕실은 처참한 상태다.

그러나 나는 실패를 받아들였다.

실수를 인정하고 만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긁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그제야 웃었다.

맥주 한 잔이 간절한 날이지만 똑 떨어졌다.

힘도 없고 잠잘 시간이 한참 넘어 있었다.


셀프 시공은 앞으로 남편과 상의하기로 하자.

공부 후 시도하기로 하자.

준비 없이 시작하지 말기로 하자.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맨발로 바닥을 밟지 말기를 당부했다.

나는 마지막까지 나의 행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는 욕실을 박박 닦을 것이다.

줄눈의 마지막 찌꺼기까지 모두 제거할 것이다.

줄눈 시공은 당분간 꿈도 꾸지 말자.

대신 세제를 뿌려 열심히 닦기로 하자.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점은 줄눈 보수제를 긁어내며 기존의 백시멘트까지 긁혀 나갔다는 점이다.

줄눈이 더욱 움푹 파였다.

깊고 깊다.


사고뭉치.

그러나 나는 책임진다.

시공 후 관찰, 유지, 보수는 정말 중요하다는 걸,

직접 부딪치고 실패해 보고 나서야 알았다.

실패의 경험이 모여 나의 삶이 더욱 단단해 지기를 기대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실패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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