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욕실은 어둠에 휩싸여

by 눈항아리

욕실 전구가 나갔다.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은 내 영역 밖의 일이다.

능력이 닿지 않는 일.

나의 범주를 벗어 나는 일.

한 평 남짓한 직육면체의 공간은 어둠에 휩싸였다.

손바닥으로 가려질 것만 같은

작은 창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이 전부인,

희뿌연 그곳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내 경계 밖의 일.

한 번도 해 보려고 생각의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일.

미지의 세계.

전구를 바꿔 끼우는 일은 나에게 그런 일이다.

전기와 관련된 것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



다 이유가 있다.

살아있는 전선을 가위로 잘라봤다.

스무 살이 넘은 나름 성인이라고 부르는 나이였다.

전선을 자르는 순간 불꽃이 튀며

온 집안의 전기가 꺼졌다.

갓난쟁이 조카가 잠들어 있었던

한겨울 새벽녘이었다.

이번엔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남편을 기다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욕실,

문을 연 채로 희미한 거실의 빛을 받아들였다.

천장의 빛이 돌아오기 전에

아주 조금의 빛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왜 욕실의 창은 작은 것일까.

작은 것이 당연하다 여겼는데

천장에 가까운 위쪽에 있는 것도 당연하다 여겼는데...

빛이 절실하니

욕실의 창을 커다랗게 만들고 싶었다.

아래로 쭉 잡아 늘려 끌어내리고 싶었다.



남편은 내가 욕실 불을 종일 켜놔서 전구가 나갔다고 했다.

정말 내가 등을 오래 켜놔서

전구의 수명이 다했는지도 모른다.

전선을 가위로 자른 건 아니지만

결국 내 탓이었군.



나는 밝은 욕실이 좋다.

집에서 나갈 때 화장실 불을 켜놓고 가기도 한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불이 켜져 있는 곳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며칠 동안은 줄눈 보수제가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독한 냄새를 집안에 가두지 않기 위해

욕실 문을 닫고

밤새 후드를 켜놓았다.

전등도 덩달아 켜놓았다.

욕실 불이 안 들어오는 건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종일 켜져 있어 수명이 다한 것일 뿐이다.

예정된 일이었다, 괜찮다.



꺼진 등불 덕분에

처참한 욕실이 어둠의 이불을 덮었다.

어둑한 바닥 타일을 보니,

축 처지고 가라앉았던 기분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식구 누구도

욕실 타일에서 하얀 물이 줄줄 흐른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새로운 전등은 아주 어두운 것으로 바꿀까.

지저분한 줄눈이 물에 다 씻겨 내려가고

욕실화에 밟혀 없어질 때까지

그냥 불이 없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퇴근 후에 전구를 바꿔준다고 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는 자연스러운 답변이었다.

그에게는 당연히 해야 할 일, 손수운 일, 늘 해오던 일일 뿐이었다.

남편에게 기본으로 탑재된 능력이 부럽다!



어둠이 깔린 욕실 바닥,

하얀 물감과 같은 물이 줄줄 흐르는 바닥 타일에

샤워기 물을 뿌려 실패한 줄눈을 씻어냈다.

어둠을 틈타

나의 과오를 하수구에 흘려보냈다.

하얀 찌꺼기가 하수구를 막지 않기를 바라며...


욕실이 환해지면 곤란할 것도 같고...

불이 안 들어오면 무서울 것도 같고....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해우소> 바닥이 처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