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손을 남편에게 사 준 적이 있다. 쓰던 효자손이 없어졌다며 찾아대길래 한 번에 세 개나 사줬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나무로 된 것, 금속으로 된 것, 싼 것으로 골랐다. 아이들은 효자손에 그림을 그려 온다. 적어도 세네 개의 효자손이 우리 집에 있다. 어딘가 구석에.
나는 효자손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남편은 종종 사용한다. 등이 가렵다고 한다. 자주 그런다. 왜 등이 가렵지? 내가 긁어준대도 싫다고 한다. 효자손이 편하고 좋단다.
그 효자손 할아버지들이 쓰는 거 아니었나? 효자손으로 등을 긁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내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나 싶기도 하다. 10년 전에는 효자손을 안 썼는데... 가끔 효자손이 없으면 그는 문턱에 등을 기대고 서서 옆으로 왔다 갔다 한다. 커 다란 곰이 나무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는 모습과 똑 닮았다. 울 자기는 전생에 곰이 아니었을까. 정말 내 손으로 긁어주고 싶다.
어제도 아들 방 문틀에 기대 서서 등을 긁었단다. 복동이가 그 모습을 봤단다. 아빠가 그러는 걸 아이들도 안다. 아니, 왜 아들들 손을 놔두고 문틀에서 그러는 걸까? 효자가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
깜깜한 밤 퇴근해 씻고 잠자기 바쁜 와중에도 우리는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나는 집에서 빨래를 개고 세 탁기를 돌리고 방청소를 하느라 바빴다. 남편은 창고에서 뭘 하는지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75리터 쓰레기봉투를 하나씩 버리기로 했다며 정리의 의지를 밝혔다. 창고 정리를 하고 버릴 것을 골라 75리터 봉지에 싸서 트럭에 실어놓고 왔다 고 했다. 창고에는 5~6년 전 이사하며 그대로 방치된 짐들과 안 쓰는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다.
버린 것도 있지만 획득한 것도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효자손이 들려 있었다. 힘든 ‘정리의 장’에서 찾은 빛나는 전리품이었다. 그걸 당당히 들고 내 책상 옆을 지나치며 등을 긁는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다. “효자손이 최고야.”
남편은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나에게도 하나 건네주었다. 효자손은 아니었다. 나에게 효자손은 필요 없다. 나는 왜 등이 안 가렵지? 남편이 건네준 건 커다란 비녀처럼 생긴 나무다. 효자손과 비슷한 길이의 나무 덩어리다. 콩나물처럼 생 겼는데 머리가 엄청 무겁다. 그걸로 어깨 뭉친 데를 두드려서 풀란다. 팔이랑 어깨랑 아프다고 골골하는 아내를 위해 안마해주는 나무를 챙겨 온 것이다.
이것을 안마봉이라 부르면 되려나? 어깨를 두드리니 정말 시원하다. 남편의 사랑이 느껴진다. “자기야 콩나물 안마봉 정 말 시원해. 최고야.”
남편은 효자손, 나는 안마봉. 남편 보고 나이 들어가네 곰 같네 하며 웃었는데,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아이들은 콩나물 같은 안마봉을 보고선 마이크인가, 휘두르는 무기인가 하였다. 나는 딱 한 번만 보고 안마하는 건 줄 알았는데... 역시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가 보다.
남편과 나는 같이 늙어간다.
그런데 등은 왜 가려운지 모르겠다. 나도 나중엔 효자손을 쓰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