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변기에 목메는 여자

by 눈항아리

파란 물고기와 같은 변기 솔, 크린 스틱, 일회용 변기 솔. 이름이 무엇이든 나는 ‘파란 물고기’라 부르겠다. 물고기는 왠지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가진 것 같고, 파랑은 왠지 깨끗한 느낌이니까. 그러나 그건 다 속임수다. 그저 ‘파란 물고기’라 부르면 덜 더럽게 생각이 되는 걸까. 훗. 나는 변기 청소를 위해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건지도 모른다.

변기는 더럽다. 지저분하다. 매일,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심각해진다. 청소를 안 하고 살 수 없다. 해야만 한다.


우리는 식구가 여섯이니 줄을 서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늘 사용자가 대기하는 웃기는 상황이다. 사용 횟수가 많은 우리 집 변기 과연 지저분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



첫 번째 변기에 ‘파란 물고기’를 넣고 파란색 물에 놀라 대충 청소를 하고 물을 내렸던 기억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해야지’하면서도 변기 청소는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저 변기 주변만 닦았다. 안 닦고 살 수는 없다. 매일 수시로 닦는다. 그러나 변기 안쪽은 정말 닦기 싫다. 마음을 다해 거부하다 엊저녁 일회용 장갑을 꼈다. 쓰레기봉투도 하나 챙겼다. 하나 남은 ‘파란 물고기’도 챙겼고, 베란다에 잘 말려둔 손잡이도 찾아왔다.


손잡이에 ‘파란 물고기’를 끼우고 주저 없이 변기에 넣었다. 이제는 파란 물에 놀라지 않는다. 물을 저으면 변기 내부 구석구석을 닦았다. 변기 외부도 그렇지만 내부는 더욱 곡선이 많다. 그런 곳을 일자 솔로 닦고 살았으니. 내가 얼마나 선에 대해 무지했는지 반성했다. ‘파란 물고기’는 변기 물에서 헤엄치며 다녔다. 물 만난 물고기의 대 활약.


가장 흡족한 부분은 변기 내부 가장 위쪽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 변기의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온몸을 이용해 닦아주는 ‘파란 물고기’는 위아래 물속과 바깥을 가리지 않았다. 손잡이를 잡고 물고기를 조종하는 나, 전능한 변기 청소꾼이 되었다. 변기 가장 위쪽 상층부를 얼마나 박박 문질렀는지. ‘파랑 물고기’는 맥없이 금세 하얀색이 되었지만, 문질러서 더러움이 씻기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상층부의 보이지 않는 불결함을 박박 문질렀다.


변기는 닦아도 닦아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왜 좋은 냄새가 안 나지? 거품이 안 나서 그런가. 청소가 끝났지만 찜찜함은 남아있었다. 변기 바깥도 구석구석 솔질을 하고 물을 뿌렸다. 바닥에 흐르는 물을 보고 또 어쩔 수 없이 바닥도 문질렀다. 왜 일은 이렇게 연쇄반응을 일으키면 커져만 가는지.


청소의 기쁨은 바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청소를 했다는 뿌듯함만 안고 잠이 들었다. 누구도 어두운 밤 졸린 눈으로 깨끗한 변기를 보고선 나를 깨워 감탄사를 읊어주지 않았다. 가족들 누구도 변기가 하얀지 까만지 덕지덕지 더러움이 붙어있는지 신경도 안 쓸지도 모른다. 사람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마련이니까. 사실 변기를 굳이 뜯어볼 이유가 없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는 변기를 청소한 사람이니까. 새벽에 일어나 가장 먼저 변기를 보러 갔다. 작정하고 보러 간 건 아니다.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 해결일 뿐이었다. (나 그렇게 변기에 목메는 여자 아니다) 변기를 다시 만났을 때 깜짝 놀랐다. 변기가 눈이 부시도록 하얬다. 아무런 냄새가 안 나는 변기를 마주한 건 참 오랜만이었다. 만족감, 뿌듯함, 기쁨이 마구 뿜어져 나와 화장실 천장을 찌를 듯했다. 화장실 변기 하나 닦고 이럴 일인가.


나는 오늘 ‘파란 물고기’를 사러 갈 예정이다. 리필 4개짜리를 사 놓으면 한 달이 든든할 것 같다.


변기는 지저분하다. 더럽다. 그러나 변기도 청소를 하면 깨끗해진다. 하얗게 번쩍인다. 식구들 누구도 아무도 안 일어나면 좋겠다. ‘사용 불가’라고 써놓고 지금의 깨끗함을 지켜주고 싶다. 한 편으로 누구든 얼른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를 구경해 보고 나의 업적을 마구 칭찬해 주면 좋겠다. 나 변기에 목메는 여자 맞는 것 같다.


‘살림의 기적 100일 살다 4’ <해우소>는
화장실 청소를 하자는 나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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