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구가 막히는 걸 방지하려고 붙인 구멍 뚫린 종이.
거름망 종이의 구멍은 배수구를 막아놓은 네모난 철판의 구멍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김새다.
구멍이 그리 작지도 않다. 어찌 보면 엄청 크다.
구멍 보다 작은 이물질은 물과 함께 배수구로 빠져 들어간다.
구멍 보다 큰 이물질은 종이 위에 남아있다.
그런데 구멍보다 큰 이물질이랄 것이 욕실에 무어가 있겠는가.
딱 하나 있다. 머리카락.
머리카락은 구멍보다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
길이를 보자면 길고 길어서 절대 빠질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굵기로 보자면 빨려 들어가고도 남을 존재감이다.
머리카락은 안간힘을 쓰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될 일인가.
머리카락 일부는 들어가고 일부는 나온다.
일부는 구멍을 빠져나갔을 테고,
일부는 종이에 붙어 물살을 가르며 버티고 있고,
일부는 종이와 철판 사이에 붙어 있다.
머리카락 한 올 조차 어두컴컴한 배수구로
미끄러져 들어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머리카락의 사정은 나에게 아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저 ‘애쓰고 있구나’, ‘딱하다’ 정도의 반응이었다.
나에게 떨어져 나간, 쓸모가 다한 머리카락에게
그 정도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으면 대단한 취급이었다.
배수구 막힘 방지 종이는 머리카락을 어느 정도 걸러줬다.
배수구 막힘의 가장 큰 원인이 머리카락이니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욕실은 지금 총체적 난국의 상황이라,
머리카락만 걸러주는 것으로는 배수구를 지킬 수 없을 것 같다.
날림으로 셀프 시공한 줄눈, 그곳에 채워 넣은
줄눈 보수제의 하얀 찌꺼기가 계속 떨어져 나오고 있다.
6인 가족의 몸에서 뽑아대는 무수한 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머리카락은 길어서 걸러지지만 짧은 털, 짧은 머리카락은
물과 함께 강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중간에 배수구 트랩에 걸리려나? 안 걸리려나?
모르겠다.
배수구 트랩에 걸린다면 욕실 바닥에 물이 찰랑거릴 것이고,
배수구 트랩에 안 걸린다면 강까지 흘러가는 긴 배수관을 통해 흘러가다
어느 순간 걸릴 수도 있고, 안 걸릴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곳은 다시 열어보고 싶지 않다.
최대한 걸러보리라.
그리하여 지난번 욕실 배수구 관리를 위해 사 온 또 하나의 물건을
배수구 구멍에 끼워 넣었다.
뭉쳐진 망사 수세미처럼 생긴 말랑말랑하고 성긴 조직의 플라스틱 덩어리였다.
그리고 구멍 난 평면의 철판에 붙이는 배수구 막힘 방지 종이도 붙였다.
이중으로 관리하면 이물질을 더욱 많이 걸러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많이 걸러낼 수 있다는 말은
뭔가가 많이 걸린다는 말과 같다.
욕실 바닥의 물이 천천히 차오르는 걸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물은 천천히 내려가고 있다.
줄눈 보수제의 찌꺼기와 우리의 몸에서 매일 탈락되는 세포들의 집합체가
이중 거름망에 착실히 걸러지고 있었다.
구멍을 어느 정도는 열어놔야 물이 차오르지 않고 흐른다.
물이 차오르는 걸 줄이려면 물을 졸졸 흐르게 조금씩만 틀면 된다.
거센 물줄기가 넘치지 않고 배수구로 원만하게 흘러가기를 원한다면
배수구 구멍에 끼워 넣은 거름망 하나는 빼야 할 것 같다.
욕실 배수구에서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가 필요하다.
손을 더럽히기 싫다고 다시 욕실 바닥에 물이 철철 넘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뚫기를 바란다면 막지 않으면 된다.
막히지 않기를 바란다면 넣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일이다.
평생 관리하고 돌봐야 하는 일이다.
청소가 그렇다.
살림은 그런 것이다.
하루하루가 매일 재생되는 것처럼
내 몸의 세포가 매일 새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집안일은 매일 매 순간 다시 태어난다.
타협을 위해 가끔, 또는 자주 욕실 사용을 자제한다.
나는 그런 방법도 좋아한다.
절대 씻기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다.
욕실 청소는 내가 남긴 진흙 발자국을 지우는 작업 같다.
욕실 청소는 나의 흔적을 지워내는 일이다.
새로 만들어진 세포 대신 집안 구석구석 자리 잡은
내 몸에서 떨어진 죽은 세포 덩어리들을 없애는 일이다.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더럽다’는 표현은 좀 심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 몸에서 분리되는 순간 나는 그것을 불결하다거나 혐오스럽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미 내가 아니라서 그런 건가?
내가 아니게 된 것을 나는 과감히 비하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닌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지도.
욕실 청소란 어쩌면 나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였던 것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자연스럽게 가져가면 될 것을 나에게 시키니 귀찮아서
더럽다느니, 지저분하다느니 하며 불평불만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