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가벼운 추석 2

미리 가는 납골당

by 눈항아리

긴 휴일을 무겁지 않게 보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글을 쓰면 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날짜는 중요하지 않다. 무슨 날인지, 며칠인지 생각지도 못했다. 그냥 휴일의 첫날이라는 것, 달력에 빨강으로 표시된다는 게 중요하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뉴스도 안 읽으니 날짜가 가는지 안 가는지 날짜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개천절이라는 걸 알았다 해도 단군 할아버지가 하늘을 연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람. 나는 그저 살기 바쁘다. 밥 해 먹기 바쁘고 애들 건사하기 바쁘고 커피 뽑아 팔기 바쁘다. 아이들은 학교에 안 가서 신났다. 나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 방학의 첫날과도 같은 중압감이 밀려왔다. 추석 연휴의 첫날이라는 무시 못 할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전날 밤이었다. 오밤중에 가게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팔이 아파 죽겠다고 골골하면서 말이다. 남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출발해서 오고 있다고 했다. 매번 일한다는 핑계를 대며 언니와 남동생을 앞세우고 나는 납골당 가는 길에 쏙 빠지곤 했었다. 바쁜데 어쩔 것인가. 나는 애가 넷이나 되고, 일도 한다. 그러나 연년생 갓난쟁이를 키우는 남동생은 가족들을 다 태우고 자주 엄마를 만나러 온다. 다섯 시간 차를 달려온다. 심지어 남동생은 전국을 누비며 일한다.


추석에 납골당에 들어가는 길이 붐빌 것을 예상해 동생은 밤길을 달려왔다. 추석이 지나고 바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매번 바쁜 척하는 나에게 언제가 편하냐고 물었다. 아침 출근 전 시간으로, 납골당이 문을 열자마자 가기로 했다. 납골당이 항상 열려있는 줄 알았는데 오픈 시간이 있다니 신기한 일이다. 우리 엄마는 봉안당 안에 있으니 문이 열려야 볼 수 있다.


밤늦게 문을 여는 마트에 들러 술과 포를 샀다. 오랜만에 엄마를 보러 간다니 마음이 괜히 울적해졌다.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한 캔 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오징어포 앞에서 고민했다. ‘늘 동생이랑 언니가 사던 멀쩡하게 생긴 것으로 살까, 아니면 술안주로 맛있어 보이는 걸 살까. 엄마도 내 마음을 이해하겠지?’ 엄마를 이상한 데 끌어들여 고추장까지 들어 있는, 누가 봐도 안주용인 오징어포를 샀다. 그래도 오징어 모양은 온전하게 들어있겠지? 몸통 뒤에 숨겨진 말라비틀어진 다리의 정체도 확인했다. 안주용이라고, 찍어 먹는 고추장 들어있다고 납골당에 못 가지고 갈 이유가 있을까.

술은 조상님께 올릴 거니까 소주는 좀... 소주를 못 마시니 소주에 대한 미련이 없기도 했다. 제사 지낼 때 쓰는 백화수복을 골랐다. 너무 큰가. 엄마한테 한 잔만 따라줄 건데... 안주는 내가 먹고 싶은 것으로 샀으니, 술은 조상님께 좋은 것으로 샀다. 나도 양심은 있어서 캔맥주 살 생각은 절대 안 했다. 그런데 다음번에는 그냥 캔 맥주로 들고 가면 안 될까 생각해 본다. 그건 단연코 지금 생각해 본 것이다.


아침 일찍 엄마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미리 성묘 온 차들이 있었다. 사진과 조화를 철거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달려있었다. 3월에 철거를 한다니 다음 설에는 우리도 사진이랑 조화를 뜯기로 했다. 엄마의 자리는 작은 창문 바로 옆이다. 엄마를 답답해 보이는 납골당으로 모시면서 그나마 창가 옆자리라서 위안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4학년이 되기 전 겨울에 돌아가셨다. 산소를 썼는데 몇 해전 누군가 우리 엄마 무덤을 파 갔다. 고성까지 가서 남이 파간 유골함을 모셔왔다. 그때도 언니와 남동생이 갔다 왔다. 나는 일을 하느라 같이 가지 못했다. 관공서에 파묘의 기록을 남기게 되어 있어서 겨우 찾았다. 우리 엄마 묘를 파헤친 범인은 옆 무덤을 잘 못 파 갔다. 자기들 아버지 묘를 우리 엄마 묘로 잘 못 알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머니 상 중이었고, 부모님을 납골당에 함께 모시려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납골당에 가고 싶으셨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가 있는 작은 집 문에는 사진 한 장이 붙어있다. 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사진이다. 우리 삼 남매와 엄마, 외할머니가 나온다. 빛바랜 사진을 복원해서 현상해 붙였던 사진이다. 엄마는 카멜색의 긴 코트를 입고 털 고무신을 신었다. 어깨까지 오는 긴 파마머리를 했다. 포대기를 하고 남동생을 업고 있다. 남동생은 그러고 보니 다섯 살인데 엄마에게 업혀있다. 우리가 어릴 땐 유모차 같은 게 없기도 했다. 그래도 그냥 걸려서 가지. 나는 그런 엄마와 동생을 부러운 듯 시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잘 토라지는 아이였다. 사진을 뜯고 나면 좀 허전해질 것 같기도 했다.


사 홉짜리 병 크기의 정종을 꺼냈다. 동생은 소주 한 병이면 되는데 왜 이렇게 큰걸 샀냐고 했다. 사실 정종도 박스에 사은품이 붙어있어 집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은품 장바구니 획득. ‘난 이런 공짜를 좋아하는 아줌마가 됐어 엄마.’ 일회용 소주컵과 오징어도 꺼냈다. 오징어를 보더니 바로 동생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다음번에 멀쩡한 오징어로 사 오라고 했다. 맛있어 보여서 샀다니 멀쩡한 오징어도 맛있다고 했다. 고추장은 뭐냐며.


술 세 잔을 붓고 동생과 둘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다. 외할머니 얘기, 이모 얘기, 일하는 얘기, 건강, 죽음 그리고 사는 얘기. 오징어를 뜯어서 먹었다. “먹어도 돼?” 내가 묻자, “그럼 안 돼?” 그런다. 정말 맛이 없다. 다리는 있지만 뜯어져 있다. 포장만 맛있어 보이는 오징어였다.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된 오징어포를 사리라.


돌아오는 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오 분을 달려 집에 도착했고, 동생은 다시 다섯 시간을 달려 집으로 갔다.


출근 전 가볍게 엄마에게 들렀다. 열흘, 긴 연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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