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는다.
헤드셋, 이어폰, 아이팟 그것이 무엇이든 귀를 막는다.
못 들은 채 한다.
“뭐라고? 못 들었는데?” 이러면 끝이다. 아주 간편하다.
최대한 멀리 떨어진다. 한 발, 두 발 뒤로 간다.
방어벽 있다면 더 좋다.
벽 뒤가 아주 좋다. 장롱 뒤도 좋다.
엄폐물이 놓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총싸움하기도 좋다. 총소리가 들린다.
이런!%!#$%#!$%#!$%
안 보이는 곳이라면 더 좋다.
문을 열고 나간다면 완벽하다.
가끔 아들이 바깥 창고로 운동을 하러 갈 때면
잔소리를 듣기 싫어
자신의 공간으로 피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주 아들이 화장실에서 안 나올 때면
역시나 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도망친다고 해도 소리는 공기를 타고 굉장한 속도로 내달린다.
귀에 당도하기 위해 초당 340미터를 달리는 잔소리.
잔소리가 일단 귀에 당도했다면?
귀를 막기는 이미 늦었다면?
일단 들었다면 두 귀를 연결하는 내부 통로를 얼른 건설한다.
빨대같이 생긴 소리관을 만들어 귀와 귀 사이에 끼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못할 것이 없다.
시간도 공간도 방법도 모두 동원한다.
그건 뇌가 가지는 강력한 방어 기제다.
잔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저절로 되는 것이다.
소리가 뇌로 전달되는 걸 최대한 막기 위한 것이다.
일단 귀로 들어온 소리는 관을 통해 빠르게 반대쪽 귀로 흘러간다.
그리고 새로운 바깥의 대기를 만나 빠르게 흩어진다.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고 한다.
그것을 ‘쇠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
소리가 흘러가는 시간 동안 적당한 때를 봐서
“네.”라든가,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적당한 제스처를 취해주면 만사 오케이다.
잔소리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자세를 보며
나는 반성한다.
잔소리를 잔소리로 전하지 말자.
말은 강력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진심이 전해지도록!
아들이 어릴 땐 등짝 스매싱도 했는데
이제는 고등학생 아들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면 아프다고 하면서 화를 낸다.
그리고 등짝이 넓어서 내 손은 작아진 듯 느껴진다.
때리지 말자. 강력하기는 하지만 나는 아들의 등짝을 아프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아들아, 청소 좀 하자.”
거실 청소를 하며 은근슬쩍 게임하는 아들의 방으로 침입했다.
긴 대걸레를 쓱쓱 들이밀며 방바닥을 누볐다.
침대 아래에서 숱한 먼지가 끌려 나온다.
바닥에는 시험 본 프린트물이 한가득 널려있었다.
“나중에 할게요.” 아들의 반응은 늘 같다.
“나중에 한다는 소리는 맨날 하면서, 청소는 한 번도 안 했잖아. 이 먼지 다 네가 마시는 거잖아.”
나의 진심을 담아 아들을 걱정하며 말했건만.
“먼지 다 마셔서 없앨게요.”라는 아들의 반응에 내 손이 울었다.
아들은 여전히 총질을 하고 있다.
자기 전까지 게임을 할 거면서 청소는 무슨, 나중은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