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가벼운 추석 5

by 눈항아리

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을 일 년으로 늘여 매일을 쓰다 보니

그 일상이 그 일상 같다.

돌고 도는 계절

돌고 도는 명절

돌고 도는 휴가철

돌고 도는 방학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을 쏙 빼놓으면

일 년 중 며칠이 남을까 싶기도 하다.



차례를 지내지도 않고

그저 며칠

느린 데크 공사한다고 분주한

가게 마당을 기웃거렸을 뿐이다.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느끼는 것은

내 책상 앞에 앉아 느낄 수 있는

묘한 안정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벌겋게 고춧가루 묻은 채

주방 개수대에 막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싱크대를 가득 채운

우리 집의 모든 컵들.

그 컵 중 하나를 들어 대충 물로 헹궜다.

그리고 아들은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인다.

저울을 꺼낸다.

머그컵에 드립백을 뜯어 끼우고

저울에 올린다.

물이 끓어도 다 신경을 안 쓴다.

게임을 하다 끝나야 다시 온다.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뜨거운 물을 들고

그래도 저울 눈금을 보며

물줄기를 내린다.

커피 향은 그런 사정을 모른다.

그저 물을 만나 피어오르는 걸 즐긴다.

아 그윽하다.

평소와 같다.

이런 분주하고 어수선한 내 커피 향.


복이는 중2다.

커피를 내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그 녀석이 떠난 자리에는

드립백 빈 종이, 컵과 저울 등이 너저분하다.

내 커피는 그것들 옆에 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도 없이

조용히

아이는 사라지고 없다.

하긴 시작부터 고등학생 제 형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내 커피 타 줄 사람을 정했었다.

커피 타는 게 귀찮긴 하지.

그래도 맛있다.

아들이 타주는 커피는

남편이 타주는 커피만큼 맛있다.

귀차니즘이 뚝뚝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커피에 물을 한 사발 더 부어 들고

책상에 앉았다.

나의 일상이 시작되는 곳.


그런데 전화가 울린다.

요즘은 따르릉이라고 안 울리지.

동생이 다시 왔다.

다섯 시간을 달려 가족을 모두 데리고 왔다.

우리 삼 남매 모이자고 한다.

가야지 안 갈 수 있는가.

자주 봐도 추석에는 또 봐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형제애를 뽐낸다.

우리는 삼 남매다.



그래도 일어서려니 내 책상자리의 평온한 일상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쌓인 설거지를 바쁘게 없애 치우면서

커피를 마지막 한 모금까지 다 마셨다.

아이들에게 양말을 신으라고 다그치며

이렇게 이곳에 앉아있다.



열흘의 긴 추석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일상은 늘 진행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흘 가벼운 추석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