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을 일 년으로 늘여 매일을 쓰다 보니
그 일상이 그 일상 같다.
돌고 도는 계절
돌고 도는 명절
돌고 도는 휴가철
돌고 도는 방학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을 쏙 빼놓으면
일 년 중 며칠이 남을까 싶기도 하다.
차례를 지내지도 않고
그저 며칠
느린 데크 공사한다고 분주한
가게 마당을 기웃거렸을 뿐이다.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느끼는 것은
내 책상 앞에 앉아 느낄 수 있는
묘한 안정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벌겋게 고춧가루 묻은 채
주방 개수대에 막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며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싱크대를 가득 채운
우리 집의 모든 컵들.
그 컵 중 하나를 들어 대충 물로 헹궜다.
그리고 아들은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인다.
저울을 꺼낸다.
머그컵에 드립백을 뜯어 끼우고
저울에 올린다.
물이 끓어도 다 신경을 안 쓴다.
게임을 하다 끝나야 다시 온다.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뜨거운 물을 들고
그래도 저울 눈금을 보며
물줄기를 내린다.
커피 향은 그런 사정을 모른다.
그저 물을 만나 피어오르는 걸 즐긴다.
아 그윽하다.
평소와 같다.
이런 분주하고 어수선한 내 커피 향.
복이는 중2다.
커피를 내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그 녀석이 떠난 자리에는
드립백 빈 종이, 컵과 저울 등이 너저분하다.
내 커피는 그것들 옆에 있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도 없이
조용히
아이는 사라지고 없다.
하긴 시작부터 고등학생 제 형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내 커피 타 줄 사람을 정했었다.
커피 타는 게 귀찮긴 하지.
그래도 맛있다.
아들이 타주는 커피는
남편이 타주는 커피만큼 맛있다.
귀차니즘이 뚝뚝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 커피에 물을 한 사발 더 부어 들고
책상에 앉았다.
나의 일상이 시작되는 곳.
그런데 전화가 울린다.
요즘은 따르릉이라고 안 울리지.
동생이 다시 왔다.
다섯 시간을 달려 가족을 모두 데리고 왔다.
우리 삼 남매 모이자고 한다.
가야지 안 갈 수 있는가.
자주 봐도 추석에는 또 봐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형제애를 뽐낸다.
우리는 삼 남매다.
그래도 일어서려니 내 책상자리의 평온한 일상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쌓인 설거지를 바쁘게 없애 치우면서
커피를 마지막 한 모금까지 다 마셨다.
아이들에게 양말을 신으라고 다그치며
이렇게 이곳에 앉아있다.
열흘의 긴 추석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일상은 늘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