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 일기>를 쓰기로 했다

by 눈항아리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고통을 이겨내고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할 자유를 누리기 위해 <오십견 일기>를 쓰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다. 오십견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그렇게 아프다고? 의문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잘한 아픔이 고통의 축에 낄 수나 있을까. 그런 시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종일 느껴지는 아픔,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런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고 나누어지기 힘들다. 내 고통을 독자들에게 덜기 위해 이 글을 읽으라 권하는 건 아니다. 고통을 읽고 체화하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러나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속적인 고통을 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픔을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픈 것을 넘어 서기를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아픔이 낫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통증을 계속 갖고 살아야 한다면 좀 덜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십견 일기>는 오십견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오십견을 치료하려면 병원에 가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라 당당히 권하겠다. 나는 오십견 전문가가 아니다. 이제 막 아프기 시작해서 아무런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십견 일기>는 오십견에 대해 알아가는 장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저 고통에 대해 늘어놓는 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최대한 고통을 이겨내고 아픔을 승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매일 골골대며 아프다고 외칠 것이다. 아픈 걸 아프다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글로써 아픔을 다 쏟아내고 나는 일상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잘 해낸다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 일기>를 쓰라고 권할 수도 있겠지. 글의 힘을 믿으며 파이팅 하기로 하자.


아픈 사람이 뭔들 못할까. 사람들은 검증되지 않은 좋다는 풀뿌리나, 음식, 약을 챙겨 먹기도 한다. 예부터 내려오는 민간요법을 찾기도 한다. 그런 이상한 방법과 내가 선택한 방법이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고통을 최소화하고 이겨내기 위한 나의 선택은 고통 일기, 아픔 일기를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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