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 일기>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by 눈항아리


지난해 폐경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해당될 일이지만 먼 훗날 일어날 일이라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었다. 마흔 중반에 막 들어선 나는 당혹스러웠다. ‘이렇게 빨리?’


빠르면 45세 , 그즈음 폐경이 된다고 했다. 임신테스트기를 열 개 넘게 해 보고선 받아들였다. 내 생애 갱년기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 후에 바로 폐경이 되지는 않았다. 사춘기가 두루뭉술하게 ‘그즈음’이라는 시기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갱년기도 출발선에 금을 긋고 출발해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기간은 그저 막연하게 정해지지 않은 막연한 기간이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컴컴한 우주에 발을 내디딘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그런 애매한 ‘갱년기’라는 기간을 지나가고 있다. ‘폐경기’라는 기간도 지나가고 있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지나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갱년기는 보통 폐경을 전후의 시기를 말한다고 하니 앞으로도 수년은 갱년기 증상과 함께 동고동락해야 한다. 그렇게 받아들인 이후로는 마음이 편했다. 언젠가는 끝난다는 뜻이므로.


갱년기에는 에스트로겐의 분비가 적어진다고 한다. 여성 호르몬이 적어지는 대신 남성화가 진행되는 것인지 코털이 자라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감정기복은 늘 심했다. 우울하고 짜증 나는 일은 늘 있었으니 별 대단할 것도 없다. 더위는 좀 타는 것 같다. 안면 홍조는 아직 없다. 팔이 아파서 좀 불편하지만 아직 불면은 아니다. 그냥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증상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오십견 또한 갱년기 증상 중 하나는 아닐까. 오십견이 호르몬 분비와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둘이 비슷한 시기에 온다고 하니 갱년기처럼 오십견도 그저 손님처럼 왔다가는 것으로 치부하면 되지 않을까. 사춘기가 대단하다고 하나 지나가는 것처럼, 갱년기도 때가 되면 지나갈 테다. 그리고 나의 오십견도 갱년기라는 특정 시기에 잠깐 나타나는 증상이라 때가 되면 말끔히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십견’이라는 기간을 지나고 있는 중인 나라고 생각하자.


오십견의 기간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보내기 위해 염증을 줄이기 위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굳은 관절을 펴는 스트레칭 같은 운동을 강조하는 딸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니 염증과 운동은 상관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운동이 염증을 줄여준다는 짤막한 기사를 본 이후라 나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는데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의학분야에 일자무식이라 아이에게 뭘 제대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운동이 활력이 되고 면역체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리고, 걷고, 움직였다. 팔은 펴지는 곳까지 열심히 뻗었다. 진통소염제를 안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빨리 낫기 위해 안 좋아하는 과일도 열심히 먹는다. 과일은 달달하고 시큼해서 정말 싫다.


갱년기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폐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오십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들의 상관관계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닥쳐온 벅찬 날들을 나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건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이고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처음엔 좀 서글픈 마음도 들었지만 받아들이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언젠가는 올 것이 닥쳐온 것일 뿐이다.


갱년기, 폐경기, 오십견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나는 나를 정성스럽게 보살핀다. 아픈 나를 잘 돌보고, 우울한 나를 다독이고, 더운 나에게 반팔을 입혀주고, 피로한 나에게 낮잠을 선사한다. 갱년기, 폐경기, 오십견 중 그 어디에도 가족에 대한 언급은 없다. 나에게 닥쳐온 변화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기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후훗. 살다 보니 이렇게 나만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노력하는 날들도 있다. 아이들과 가족에 파묻혀 살다 보니 이런 날들도 있다는 게 놀랍다. 다시 ‘나’로 바로 서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아픈 뒤에 성숙한다. 그리고 혼란 뒤에 새 질서가 오기 마련이다. 변화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 나를 빚어내기 위해 나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그런 빛나는 삶의 순간을 나는 지금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너무 느리게 지나가는 것 같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빨리 지나가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십견 일기> 우선순위는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