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빨래방 운동화 세탁기 사용기

by 눈항아리

우리는 장화 전성시대를 보내고 있다.

나와 셋째 달복이, 넷째 복실이다.

다른 가족은 장화를 안 신는다.

신발이 안 젖는 건가?

복이에게 물었다.

“신발 안 젖어?”

“신발이 왜 젖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나만 물웅덩이를 밟으며 첨벙거리며 다니는 건가?

나는 살살 피해 다녀도 신발이 젖는데.

어느 비 오는 날에는 달복이에게 물었다.

“운동화 안 젖어?”

“운동화는 젖지요, 그런데 발은 안 젖어요.”

달복이는 그날 장화 대신 운동화를 신었다.

출발할 땐 비가 안 왔었는지 운동화가 더 편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5학년 달복이는 운동화를 더 좋아하기는 한다.

그러나 한두 번 장화를 권하면 신기는 한다.

비 오는 날이 계속되며 우리는 장화 신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여름 장마 한참 전에 준비해 둔 장화였다.

올해는 빗방울 구경하기 힘들었고 가뭄이 길어 장화가 제값을 못해 살짝 아쉽기도 했다.

그러던 중 비가 내렸고 나의 아쉬운 마음을 보상해 주려는 듯 계속 내렸다.

비가 오는 중에도 보송한 발가락이 좋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만 좀 내려도 좋을 텐데.

가뭄에 비가 내리라고 너무 바라서 그런가.

우리의 염원이 구름을 만들어서 그런가.

비가 너무하다.

스무날을 거의 쉬지 않고 내리고 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은 모두 소풍을 다녀왔다.

한 명은 캠핑을 다녀왔다.

신발이 다 젖어서 돌아왔다.

젖은 신발, 지저분한 신발, 신발장에 넣어두었던 신발 등을 모아 여섯 켤레를 만들었다.

운동화 빨래방으로 간다.



추석에 서울서 내려온 큰집 식구들.

아이들이 바다에 갔다 운동화가 다 젖었다.

다음 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젖은 운동화로 갈 수가 없어 가벼운 신발 하나씩을 사 신었다.

그러나 운동화 빨래 좀 해 본 아주버님은 운동화 세탁기가 있는 빨래방을 찾아냈다.

손세탁을 하고 며칠은 걸리는 운동화 빨래방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흔한 빨래방에서 2시간 정도면 세탁과 건조가 끝난다고 했다.

세 켤레를 들고 가 운동화를 금방 빨아왔다.

여섯 켤레까지 세탁이 가능하다고 했다.

큰 아이의 운동화를 빨기 위해 대야에 세제를 풀었다.

운동화를 세제 물에 담가 놓고 아침이 되었다.

아픈 팔로 감히 솔질을 할 엄두가 안 났다.

운동화 빨러 가자.

기계는 무서운데 큰 아들을 불러 같이 가자고 할까?

처음은 조금 어설픈데 누구랑 같이 가지?

운동화를 빨려 간다니 평소 늘 같이 붙어 다니던 딸아이도 내 손을 놓았다.

오빠랑 게임하면서 집에 있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운동화를 빨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지도를 확인하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10분 거리에 빨래방이 있었다.

이렇게 가까울 수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기계를 무서워한다.

무거운 기계는 더 무섭다.

빨래방은 한 번도 안 가봤다.

집 세탁기와 매일 씨름을 하지만 뭔가 빨래방의 거대한 세탁기를 보면 주눅이 들 것 같았다.

그러나 운동화를 손으로 빠는 것보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더 쉬워 보였다.

나는 할 수 있다.



​완벽한 주차 실력으로 빨래방 전면을 다 막아서며 주차를 마쳤다.

잠시 들어가 운동화 세탁기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 ​

운동화를 바리바리 들고 들어가 밑창을 분리했다.

벽면에는 세탁기, 건조기 사용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밑창이 쪼그라드니 절대 넣지 말라고 했다.

쪼그라든 신발 밑창이 기계에 두 개나 붙어 있었다.

그래서 신발 밑창은 빼고 신발만 넣었다.

그런데 이건 건조기에 넣지 말라는 얘기였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나서야 인지했다.

여섯 개 곱하기 두 개, 모두 12개의 신발 밑창을 집에 가서 빨았다.

억울하고 억울했다.

세탁기 신발 밑창을 분리해서 넣고 운동화와 같이 빨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탁기가 돌아가는 중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했으므로

나는 그 무거운 문을 열 수 없었다.

신발은 끈을 풀지 말라고 했다.

큰 아이의 신발은 끈을 다 풀어놔서 다시 묶어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게 운동화를 세탁기에 넣었다.

문을 닫고 500원 동전 9개를 넣었다.

4500원에 운동화 세탁 여섯 켤레라니!

신세계를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30분 알람을 맞추고 밖으로 나왔다.

가을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을 파랗고 낙엽이 떨어지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오랜만에 비가 그쳐서 더 좋은 날.



세탁은 여섯 켤레라면서 건조기에 운동화 거는 곳은 다섯 개다.

배신.

그러나 내가 누군가.

하면 된다.

다섯을 여섯으로 바꾸는 힘.

운동화 하나는 뒤집어 걸쳐 놓았다.

상부가 더 잘 마른다고 하여 상부에 한 짝, 둘째 칸에 한 짝 걸쳤다.

55분 말리는데 500원 동전 8개 투입.

동전만 넣으면 다른 신호 없이 그냥 돌아간다.

걱정한 게 무색하다.

운동화 세탁기, 건조기 사용은 너무 쉬웠다.

신발 밑창 12개가 남기는 했으나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처음이고 다음엔 잔일이 남지 않도록 더 잘할 수 있다.



빨래방 앞에 차를 세워놓고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창문을 열어 가을바람을 맞이했다.

빨래방에서 풍겨오는 세제 향기가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빨래방 쪽 문은 닫고 반대쪽 문 두 개를 모두 열고 여유로운 바람을 만끽했다.

운동화 빨래방이 준 휴식 시간이었다.


신발은 위쪽은 잘 말랐고, 아래쪽은 칙칙했다.

그래도 대 만족이다.

처음치고 아주 성공적이다.

덜 마른 신발은 집에 와서 제습기 신발 코스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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