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남매 환절기 패션에 관하여

by 눈항아리

여름이 지난 지 한참 되었다. 한참은 무슨, 그냥저냥 지나가는 날들이 언제 가을을 지나 겨울바람을 싣고 왔는지. 10월 중순이 지났으니 가을이 한창이다. 비가 지독하게 내리니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감감하다. 내리는 빗물에 계절을 흘려보내는 건 아닌가 싶어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이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는 게 당연한데도 서늘한 아침 뚝 떨어진 기온이 생소하다. 밤새 추웠는지 큰아들 복동이는 날씨를 확인하고 겨울 잠바를 꺼냈다. 두툼한 한겨울 패딩을 입고 학교에 간다고 했다. 아이들은 크나 작으나 다들 이불을 뻥 걷어차고 잔다. 그러니 추울 만도 하다. 한밤의 최저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다음 주엔 0도까지 떨어진다니 겨울이 오기는 오는가 보다.


많이 양보해도 패딩은 너무 이른 것 같다. 대신 복동이에게 경량 패딩을 권했다. 뽀글뽀글 양털 같은 잠바도 꺼내고 팔이 짧아진 얇은 패딩도 꺼내줬다. 복동이는 셋 중 제일 먼저 꺼내놓은 까맣고 가벼운 초겨울 패딩을 입고 갔다. 그래도 벌써 패딩이라니 너무 빠르다. 옷 세 벌 꺼내고 복이는 가볍게 통과다.


둘째 복이는 자신이 처음으로 골라 산 옷을 교복에 매치해 입느라 여념이 없었다. ‘웬즈데이’가 영문으로 대문짝만 하게 박힌 맨투맨 티셔츠를 입었는데 체크무늬 하복 칼라가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복아, 잠바는?” 잠바는 가방에 구겨 넣었단다. 추우면 입겠지 했다. 그러나 밤중에 만난 복이는 코는 빨갛고 손과 얼굴이 바짝 얼어 있었다. 결국은 귀찮아서 가방에 챙긴 잠바를 안 입은 것이다.


셋째 달복이는 아직 여름 잠바를 고수하고 있다. 왜 아이들은 하나의 옷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초등 고학년 때 복이도 그랬었다. 복이는 철 지난 얇은 겉옷을 추운 날이 한참 지나도록 입고 다니고, 철 지난 두툼한 겉옷을 봄이 지나 여름이 가까워 올 때까지 입고 다녔다. 그것이 내 눈에는 집착처럼 보이는데 편한 것에 대한 애착이거나 다른 옷에 적응하기 귀찮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복이가 하던 대로 달복이가 그 시기에 똑같이 따라 하는 걸 봐선 사춘기 청소년의 통과 의례인가 싶기도 하다. 복이가 보통 애착을 보이던 옷은 모자가 있었는데 달복이가 고수하고 있는 여름 잠바도 그러하다. 그러나 추운데 얇은 티셔츠에 여름 잠바 하나를 걸치고 나가는 걸 보고 엄마가 돼서 잔소리를 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가을 잠바가 밖에 걸려 있는데도 싫단다. 형들에게 물려받아서 그런가, 오래된 옷이라 그런가, 항공잠바가 마음에 안 드나, 아님 요즘은 이런 옷 안 입나. 딱 지금 시기에 입으면 좋을 것 같은데 달복이는 거들떠도 안 본다. 지난해 입던 경량 패딩을 꺼내 입혀보니 손목이 드러난다. 키가 부쩍 큰다 했더니 팔도 길어졌나 보다. 가을 옷도 겨울 옷도 다 사야 하나 보다.


삼 형제지만 셋째까지 옷을 물려 입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둘째가 형 옷을 물려 입은 것도 아니다. 둘째는 새 옷을 입고 싶었는지 일찍이 형의 키를 추월했다. 몸매가 달라서 물려 입은 옷이라고 해봐야 철 지나고 한두 번만 입은 외투 정도. 그러니 셋째가 형들 입던 옷을 안 입는다고 해서 그리 아쉽지도 않다. 나름의 스타일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니까. 하물며 그 잠바는 첫째, 둘째를 거쳐 셋째에게까지 물렸으니 나도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건 욕심이라 생각하자.


그래도 큰 형이 패딩을 입고 가는데 여름 잠바는 좀 그렇지 않은가. 달라도 너무 다른 아들들이다. 달복이와 한참 옷으로 실랑이를 하고 있는 와중에 남편이 중간에서 그런다. “바람막이라서 생활 방수도 되고 비 오는 날 딱 좋구만, 뭐.” 남편이 자기편을 들어주니 달복이는 기분이 좋았나 보다. 얼굴에 야비한 승리의 미소가 ‘씨익’하고 걸렸다. 나와 얼굴을 마주치자 얼른 미소를 감추고 여름 잠바를 걸친 위에 가방을 둘러맸다. 치사한 부자.


다음 날은 더 추웠다. 달복이는 여름 잠바를 여전히 고수했다. 그 잠바가 대체 뭐라고. 날이 추워 어쩔 수 없이 잠바 위에 두꺼운 겨울 패딩 조끼를 입혔다. 달복이는 군말 않고 팔을 끼우고 가방까지 멨다. 왜 그러냐 아들아. 달복이의 패션은 창조적으로 지저분해 보였다. 대체 모자 달린 여름 바람막이가 뭐라고.


달복이의 바람막이 여름 잠바는 용도가 다양하다. 주머니는 지퍼도 똑딱이 단추도 없으나 핸드폰을 넣고 빼기에는 그만이다. 잠바의 모자는 대게 뒤집어쓰고 다니는데 비 오는 날엔 우산을 대신한다. 요즘 들어 기다란 우산을 들고 다니기 귀찮아하는 달복이는 가방에 미니 우산을 대충 챙겨 나갔다. 계속 비가 오니 우산을 안 챙겨가면 부모님께서 기다란 우산을 손에 쥐어 줄 것이 뻔하니 선수를 친 것이리라. 그러나 하굣길에 꽤 많이 비가 왔는지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썼다. 그러곤 가방에 다시 넣기 귀찮았던 걸까. 실내에 들어와선 한참 있다가 불룩한 잠바 주머니에서 힘겹게 꺼냈다. 주머니는 핸드폰을 넣어도 한쪽으로 훅 하고 기우는데, 아무리 작은 미니 우산이라지만 주머니에 들어가기에는 비좁았을 테다. 주머니를 어떻게 늘렸는지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잠바 주머니에서 꺼내는 걸 보고, 나는 기겁을 했다. 물이 물이 물이! 다행히 너무 놀라 소리는 못 질렀다. 그 옷을 빨지도 않고, 달복이는 다음날 잘 말려서 또 입고 학교에 갔다. 잠바는 흰색인데 손목에 때가 꼬질꼬질해도 빨아달라고 절대 안 그런다. 내놓지를 않는다. 내가 어디 빼돌릴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초겨울 잠바를 고르고 있다. 장롱은 다 뒤졌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있다. 이제는 혼자 골라선 절대 안 되고 색깔과 디자인을 일일이 보여주며 허락을 받고 사야 한다. 안 그럼 장롱 안에 고이 모셔졌다가 고물이 되어 쓰레기 통으로 바로 갈 수도 있다. 큰 아이들이 안 입는 옷은 보통 내가 입는다. 그래서 나는 옷이 많다. 그런데 초등 고학년 달복이의 옷은 입을 수도 없다. 이제는 아이에게 물어야 한다. 옆에 앉혀놓고 고르라고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첫째도 그랬고, 둘째도 그랬으니 이제 셋째가 그러고 있을 뿐이다. 달복아 넌 어떤 옷이 좋아? 무슨 색? 모자 있는거?


넷째, 막내 복실이는 옷을 가리지 않는다. 여자 아이인데도 옷에 무감각하다. 내가 권하는 대로 입는다. ‘아직’ 인지도 모른다. 우리 아들들도 복실이처럼 어린 시절엔 다 그랬다. 예쁘게 따뜻하게 입히고 참 좋았는데... 아이들은 내 맘대로 옷을 입히고 벗기는 그런 인형은 아니니까. 다 큰 아이들이 자신의 주관대로 옷을 입는 건 당연한 일인데 왜 나는 아이들이 고집을 부리는 것으로만 보일까. 대체 왜 옷 때문에 아이들이랑 싸우는 건지. 그래도 추울까 봐 걱정을 할 수는 있지 않나? 미련하게도. 그 걱정조차도 내려놓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계절이 바뀌고 있다. 아이들은 커가고 있다. 옷은 작아지고 있다. 장롱은 열고 닫는 횟수가 늘었다. 세탁기와 건조기는 늘 바쁘다. 계절이 바뀌면 더 바빠진다. 그 와중에 첫째 복동이는 성장이 멈춘 것 같다며 슬퍼하고 있다. 팔이 껑충한데도 키가 안 컸다고 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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