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 관리를 위해 밥을 한 숟가락씩 남긴다는 남편을 따라 나도 밥을 줄였다. 딱 한 끼 밥, 딱 한 숟가락. 편안한 배를 안고 뿌듯한 마음으로 늦은 밤까지 일했다.
퇴근길에 허기가 뱃속에서 ‘쿠르릉’ 소리를 냈다. 배고픔을 느낀다는 건 좋은 신호다. 에너지를 신나게 태우며 몸 무게를 줄여보자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신나게 차를 달리며 휘발유를 태우며 집을 향해 달리며 나는 뭘 먹을까 생각했다.
배가 소리만 냈다면 먹을 생각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한 시간 더 늦은 시간에 퇴근하지 않았다면 먹을 생각을 안 했을지도.
일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 나는 내 몸에게 배에게 마음에게 야식을 선사했다. 배는 외쳤다, 먹어야 한다고. 머리는 말했다, 먹어도 된다고. 마음은 속삭였다, 먹어야 산다고. 그렇게 먹는 행위는 정당화된다. 그리하여 근사한 그림이 그려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자. ’
생각은 이루어진다. 마음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걸 보는 기쁨이란, 그것도 먹는 것을 준비하는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방을 내팽개쳤다. 주저하지 않고 주방으로 향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그릇을 잡았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시리얼은 넉넉했다. 무려 1650그램. 거기서 조금 덜었을 뿐이다. 봉투를 열고 두 손으로 가득 시리얼을 담았다. 내 배를 채워줄 황금보배가 내 손안에 들어온다.
시리얼에 콸콸 우유를 부었다. 1리터 우유통을 들이부었다. 다 부은 건 아니다. 나도 양심이 있어 조금 남겼다. 밥 숟가락을 들고 와 퍼먹기 시작했다.
뒤이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스케일이 남달라. ”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여 그릇에 얼굴을 숨겼다. 그릇이 얼굴만 했다.
“그럴 거면 밥을 먹어.”
이미 바가지 같은 그릇에 우유랑 시리얼을 한가득 말았는걸. 퍼먹고 퍼먹고 또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그릇 덕분에 만족스러운 하루의 끝을 맺었다.
아침을 맞았다. 배는 두둑했고 얼굴을 팅팅 불었다. 빈 그릇은 테이블에 그냥 놓여 있었다. 그런데 바가지만 한 샐러드볼 속에는 반 잘려 속이 파댕겨진 밤껍데기가 수두룩했다. 남편이 지나가다 시리얼 먹던 빈 그릇을 들여다 보고 밤 껍데기를 보고 나를 보며 말했다.
“밤도 먹었어?”
남편은 내 부른 배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기특하다며 잘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줬다.
“자기 어제저녁밥이 좀 적어 보이더라. ”
오늘의 교훈. 섣부르게 밥을 줄이지 말자. 남편은 남편의 길, 나는 나의 길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