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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재미를 찾아서

by 눈항아리

재미없는 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재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재미가 없는 게 아니라 재미난 것들이 그냥 흘러가 버린다. 빠르게 지나가는 재미를 잡아채지 못한다. 그럴 여력이 없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쭉 빠져 있어서 그렇다.


그래도 계속 재생되면서 남는 것이 있다. 자동차 바퀴가 도로를 지나가면 바닥에 떨어진 무수한 낙엽을 훑고 지나가며 둘둘 감아올려 휘몰아치는 낙엽 바람을 만든다. 가벼운 나뭇잎이 도로를 달리며 굴러다니고 다시 바람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꽤나 재미있다. 그러나 바람이 흘러가고 자동차가 지나가면 잊히는 순간이다.


종일 일에 파묻혀 있다가도 재미를 찾는데 도통 그게 보이지 않는다. 침울하다. 그러면 슬그머니 먹을 것이 생각난다. 맛있는 거 뭐 없나. 재미를 먹을 것으로 찾다니 참 몹쓸 생각이다. 가을이면 가을 냄새가 나는 재미를 찾아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주말에 만난 아버지에게 단풍 구경을 다녀오셨냐 물었더니 아버지가 그런다. 고성으로 갈 거라면서 문어 사러 갈 거라고 하셨다. 가을 단풍도 즐기고 좋아하는 먹거리도 즐기는 것. 그게 사는 재미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류의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재미를 찾기 위해 맛있는 걸 찾았으나 결국 밥 해결이 우선이다. 우거지가 들어간 해장국을 한 냄비를 사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밥으로는 부족해 빵집에도 들렀다. 남편이 좋아하는 소보로와 나를 위한 팥크림빵을 샀다. 입이 즐거우면 인생이 즐겁다. 그런데 빵을 먼저 먹고 점심을 먹고 배가 불러 침울하기만 했다. 원초적인 것들로 나를 채워도 하나도 안 즐거웠다. 너무 배를 채워서 그런 것일까.


그런데 재미, 즐거움, 행복, 감사 이런 느낌이 갑자기 찾아왔다. 택배 아저씨가 전해주셨다. 책일까? 책이라면 당연히 좋았겠지만 이상하게도 요즘 열심히 까고 씻고 짜고 끓이고 있는 저주받아 마땅한 생강 박스를 받아 들고 이런 기분을 맞았다.


생강을 또 한 박스 받아 들고 기쁨에 겨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생강이 너무 크고 좋았다. 택배 박스를 열어 보고는 꾸준히 좋은 물건을 보내 준 판매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하며 어떤 댓글을 달까 고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고 정상이 아니다. 나는 생강과 대치 상황이 아니었던가. 급기야 생강 덩어리 하나를 들고 사진까지 찍었다. 들어 올린 생강이 묵직하다. 생강 한 덩어리가 무려 500그램. 무게는 왜 재고 난리람. 역시 전문 농사꾼이 키운 것은 다르다. 우와! 감탄과 감사 속에 사진을 찍어대면서 정신이 돌아왔다.


휘휘 휘둘리는 삶, 흔들리는 인생 살이 속에 재미가 그렇게 찾아왔다. 어이없게도 생강 품질이 너무 좋아서.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미소가 내 얼굴에 퍼졌다. 해장국은 냄비에서 끓고 있었고, 옆에 있는 전기 레인지에서는 생강이 끓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크림빵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생강을 보내주신 판매자님께 감사드린다. 덕분에 시간도 품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시간 상 일일이 사진과 댓글을 달아드리지 못한 점 양해부탁드린다.


삶의 재미란 결국은 삶 속에 있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시름 속에서 웃음을 찾는 것 그게 삶의 재미 아닐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 마지막 생강 박스를 받아서 그냥 기분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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