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한 망 세 포기에 5900원. 가격표를 보고 눈이 돌아 그랬을 거다. 홀쭉한 배추 한 포기 5900원, 김장 배추도 한 망에 15000원이 훌쩍 넘었는데, 세 포기 한 망에 5900원이라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계란 사러 마트에 갔다가 횡재가의 배추를 다섯 망이나 샀다. 그게 횡재인지 알았겠지, 그게 횡액의 징조인지는 몰랐겠지. 가을엔 청 담그느라 바빠서 12월까지 눈코뜰 새 없이 바빴는데 올해는 생강청, 모과청을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주말에 시간이 비기도 했고 싼 배추도 만났고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배추를 샀을 뿐이다.
그런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나는 몇 년 동안 김장을 안 했다는 사실이다. 김장철이 다 지나면 마트에 청갓도, 홍갓도 다 들어가고 밖에 내다 놓고 팔던 새우젓, 생새우, 액젓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다섯 개씩 들어있는 다발 무도 없고, 흙쪽파도 없다.
그런데 요즘은 김장철이다. 배추도 무도 흙쪽파도 다 있다. 하루만 파는 게 아니라 매일 파격 세일 중이다. 어제 하루 나에게 보였던 횡재 가는 어제 하루만의 파격 할인이 아니었다. 오늘도 마트 앞은 문전성시였다. 무거운 한 망 배추를 들기 위해 어떤 남자도 동원되지 않았다. 배추를 들춰보고 한 망을 들고 기쁨에 겨워하는 중년 부인들, 머리 희끗한 할머니들이 마트 주위에 바글바글했다. 다발 무를 장바구니에 넣고 들고 갈 생각에 난감해 바닥에 내려놓은 모습도 보았다. 머리 좀 쓴다는 사람들은 바퀴 두 개 달린 플라스틱 장바구니 수레를 끌고 왔다. 더 머리를 쓰는 사람은 마트 앞에 코너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트렁크를 열었다.
나는 왜 두 팔의 힘을 믿고 전력질주를 하며 배추망을 날랐을까.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는 배추 행사인데, 왜 어제만 할 거라 다급하게 생각했을까. 배추 계산을 해놓고 길거리에 쌓아둔 배추를 누가 가지고 갈까 걱정되어 양손에 하나씩 망 배추를 들고 온몸이 부서져라 달렸다. 다발 무 2개까지 총 4회를 왕복하고 녹초가 되었다. 남편에게는 도와달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바쁜 시간이었고, 예약이 있었다. 내가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에 남편에게 대신 가서 배추를 들고 오라고 못 했다. 배추가 품절되어 없어질까 봐 남편에게 달려가 설명을 하고 역할을 바꾸자 말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꼭 그 시간에 배추를 사서 옮겨야 했다. 가게가 제일 바쁜 12시 즈음이었다.
오로지 나의 힘으로 나의 의지로 배추를 샀다. 그리고 완벽하게 옮겼다 나의 두 팔로. 팔이 후들후들 했지만 보람찼다.
왜 배추를 산 것인가. 만약 김장을 한다면 딱 10 포기만 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10 포기면 족했을 배추를 왜 15 포기나 산 것인가. 사실 배추가 좀 작아 보였다. 좀 작아 보이니 조금 더 살까 했다. 그런데 막상 옮겨보니 작아 보여도 알이 꽉 찼나 보았다. 작아 보였지만 결코 작지 않았다. 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
그건 다 김장의 유혹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장 늘어남의 법칙이라고 아는가? 그건 내가 만든 법칙인데, 딱 10 포기만 하자, 하고 생각하지만 양념이 남아서, 배추를 더 사고, 총각무도 사서 무치고, 깍두기 무도 무치고 그렇게 김장이 배로 늘어나는 법칙이다. 그 이상한 법칙 때문에 배추를 더 사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김장을 할 때도 늘 후속으로 배추를 더 사고 무를 더 사시더라는. 그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법칙이 아닌지도 모른다. 김장을 하는 모든 사람이 그런 상황을 맞이하는 건 아닐까? 아님 나 같이 계획성 없는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종의 생활의 유머 같은 것일까.
드디어 오늘 오후 마지막 생강병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바로 김장에 돌입했다.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 배추 15 포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가격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였다. 그렇다. 배추가 작았던 것이 아니라 배추가 싸다고 가격에 혹해 배추를 더 산 것이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