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이 거울 앞에 섰다. 여드름을 짠다. 큰 여드름이 딱 눈에 띈다.
“엄마가 짜주면 안 될까?”
싱긋 웃기만 하고 뒷걸음치더니 도망간다. 그러곤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이번에는 거울 앞에서 외투를 입고 벗기를 반복한다. 얇은 바람막이부터, 쥐색 후드집업, 깔깔이 경량 패딩, 두툼한 겨울 옷을 줄줄이 입고 벗는다. 거울 앞은 패션쇼의 현장이다.
“엄마 내가 초등학교 때 입고 다니던 그 잠바 이름이 뭐지? ”
“항공 잠바?”
“그거 하나 살까요?”
입어본 옷들이 다 마음에 안 드는지 새로운 옷 구입 의사를 밝힌다. 결국은 마음에 드는 잠바를 고르지 못한 아이는 후드티 하나를 입고 나타났다. 안 춥다나 뭐라나, 낮에는 덥다나 뭐라나. 밤에는 추워서 오그라드는 날씨가 분명하데도 말이다.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한 존재의 번잡함이란 그렇게 옷 쇼핑을 예고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중학생 아들은 핸드폰을 들고 옷을 고르고 있었다.
“엄마 나 바지 사이즈가 뭐야?”
“26.”
“s야, m이야?”
“그거 바지마다 달라서 엉덩이 둘레, 허리둘레, 밑위길이, 바지 길이 확인해 봐야 해. 지난번에 산 바지 그거 딱 맞잖아. 쇼핑몰에서 그 바지 페이지 들어가서 사이즈 표 봐봐. 그거 참조해서 바지 사면 돼. 그리고 바지마다 크게 나왔는지 작게 나왔는지 다 다르거든, 입어 보면 좋지만 그게 안 될 때는 사람들 구매 평을 읽어봐. 평소 사이즈보다 커요, 작아요, 이런 거 참고해. ”
집에 가서 보라는 말이었는데 조수석에 앉은 중학생 아들은 계속 열심히 바지 사이즈를 고심했다. 구매평도 읽어보고 사이즈 표도 찾아보고 자신은 s를 사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청바지 두툼한 거 하나 살까?”
그냥 사세요. 왜 자꾸 물어볼까.
“청바지는 겨울에 입기에 좀 추운데, 안에 기모 든 걸로 사면되겠다.”
“난 기모는 싫은데, 이건 그냥 좀 두툼하게 나왔어.”
만져보아야 아는 옷의 두께를 구매평에서 어디에서 읽어보고 알았나 보다. 두툼한 청바지도 겨울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입고 다니기에는 추울 텐데. 추우면 봄, 가을에 입으면 되는 거지 뭐.
고등학생 아들이 거울 앞에 섰다. 머리를 매만진다. 생생하게 윤기 나는 머리카락, 빼곡하게 겹겹이 머리를 감싼 검은 숲 같은 굵은 모발. 짧게 이발하고 온 스타일의 머리는 앞 머리에 포인트를 줬다. 앞머리 오른쪽 하나의 컬이 동그라미를 만든다. 파마를 안 했는데 파마의 컬이 살아있다.
“엄마 왜 내 머리만 이래?”
집에서도 유일하지만 학교에서도 전무후무한 악성 곱슬이다. 파마머리 단속을 하던 중학교 때는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보내 아이의 곱슬머리를 알렸다. 그래도 입학 후 몇 번 교문에서 단속되었다. 그러곤 온 학교에 소문이 났단다. 파마머리 같은 곱슬머리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 이런 머리를 반 곱슬이라고 하나?”
무슨 말이람, 반 곱슬이라니. 곱슬과 직모의 중간 단계를 반 곱슬이라고 한다. 아이는 완벽한 곱슬이 분명하다.
“애들이 매직을 해보래.”
그래 매직을 하면 쭉쭉 편 마당비가 된단다.
“한번 해 볼까?”
그래 해 보아라. 쫙쫙 펴 보아라.
고등학생 아들, 어느 날은 거울 앞에서 얼굴 여드름을 관찰하더니 그런다.
“엄마 나도 세안제 써볼까? ”
쓰세요. 좀 제발 쓰세요. 써라 써라, 할 때는 안 쓰더니 이제 쓸 마음이 생기니?
“이거 거품 짜서 문지르면 되는 거야?”
매일 10분씩 세안하는 동생에게 물어봐라. 어떻게 세안하면 좋은지.
외모에 도통 관심 없던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오는 건가, 청소년 아들들이 거울 앞에 섰다. 거울을 보며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지금은 여드름 투성이, 머리는 풍선 같이 부풀어 있고 뻗쳐 있고, 옷은 뭘 입어도 마땅치 않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날이 얼른 오면 좋겠다. 겉모습을 넘어 아이들의 얼굴에 자신감의 빛이 흘러넘치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 빛을 아이들이 알아챌 수 있을까?
거울을 보며 나는 여드름을 쥐어뜯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거울을 보며 짠 음식, 밀가루 음식을 너무 먹었나, 하고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의 당김을 보고 건조한데 얼굴에 뭘 좀 발라야겠다고 생각한다. 거울을 보면 내가 보인다. 나는 오늘 어떤 모습이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빛나나? 빛나게 보이면 공주병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