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덤벙 김장이라고 하자

2025 김장 대장정

by 눈항아리

김장을 마쳤다. 김치 냉장고 맨 아래칸에 들어가는 큰 통 두 개, 그리고 작은 통 두 개에 차곡차곡 다 들어갔다. 모두 네 통. 열다섯 포기 김장을 하는데 이틀을 바쳤다. 결과가 통 네 개라니 허무하다. 4년의 대학생활을 어렵사리 마치며 한 장의 종이 졸업장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느꼈던 허무함과 똑 닮아 있었다. 김치 냉장고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네 통이라니. 그런 허무만 남았을까.


김장을 마쳤지만 양념이 반이나 남았다. 배추 10 포기 김장 레시피를 보고 2배 양념을 해서 그렇다. (검색한 것 중 가장 상단에 나온 것을 레시피로 삼았다.) 모자란 것보다 남는 것이 나으니까. 양념이 얼마나 들어갈지 모르니 많이 했다. 나는 손 큰 여자니까.



첫날 야채 다듬어 썰기

다발 무 2 다발 총 10개. 김장 무는 평소 마트에 파는 무와는 좀 다르다. 좀 작고 통통하고 단단하다. 채를 썰었다. 예쁘게 썰 수 있는 부분만 썰고 마지막 꼬다리(?)는 과감히 깍둑썰기를 했다. 어차피 깍두기를 할 거니까. 채를 썰다 썰다 힘이 들어서 무 두 개는 고등어조림에 들어가는 큰 무조림 크기로 나박하게 썰었다. 혹시 배추가 짜게 절여지면 쓸 요량이었다.


무를 썰고 남은 초록의 잎들은 깨끗이 씻었다. 처마 그늘진 곳에 거꾸로 매달아 시래기를 만들면 좋겠지만 우리의 시골집에는 처마가 없고 그늘도 없다. 그저 시래기 만들기가 귀찮아서 그렇다. 그렇다고 펄펄 살아 씹어 먹어도 괜찮을 초록 이파리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기는 아까웠다. 쪽파와 같은 길이로 썰어 우선은 냉장 보관했다.


쪽파 한 다발. 쪽파 까는 거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 거 정말 안 좋아하는데. 어린 시절 농사짓는 아버지는 쪽파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왔다. 그 쪽파를 얼마나 많이 깠는지. 그땐 장갑 낄 생각도 못했다. 다 까고 나면 며칠 동안 손톱에 흙물이 들어 까맣게 보였다. 그게 왜 그리 창피했던지. 지금은 온갖 장갑을 다 끼고 하니 손톱 때가 생길 일이 없는데도 그냥 싫다. 흙쪽파 까는데 손을 많이 써야 하니 귀찮기도 하다. 나는 깐 쪽파가 좋은데 김장에 들어가는 쪽파는 많이 필요하다. 마트 냉장고 속 하얀 스티로폼에 몇 가닥 들어가 예쁘게 가녀리게 랩포장이 되어있는 깐 쪽파 몇 개로는 감당이 안 된다. 길가에 늘어놓고 파는 시장표 같은 흙쪽파 한 단. 끈 하나로 묶인 밭에서 바로 온 것 같은 포장은 하나도 없는 파릇하고 양 많은 흙쪽파 한 단이면 족하다. 가늘면 손이 더 가는데 올해 산 것은 조금 굵직한 편이다. 뿌리를 자르고 까고 노란 잎을 잘라냈다. 씻고 썰고 담아서 냉장에 넣었다.


청갓 한 단. 홍갓과 청갓 중 무엇을 살까 고민했다. 너무 단이 작아서 하나 살까 두 깨 살까? 청갓 하나만 샀다. 두 개 살 걸 그랬나. 씻고 썰어 냉장에 넣었다.


마늘 1킬로그램. 씻어서 꼭지 따기.



“미나리 넣어야 해? ”

“그런 걸 왜 넣어.”


“생새우 넣어야 해?”

“그런 걸 왜 넣어.”


“건표고 육수 끓일 때 넣어야 해?”

“그런 거 안 넣어도 돼.”


“디포리 안 샀는데 멸치라도 넣을까?”

“안 넣어도 돼, 괜히 잡내 날 수 있어.”


언니에게 물었더니 아주 간결한 대답이 왔다. 안 넣어도 된다니 마음이 편했다. 마트에 파는 미나리는 너무 적고, 비싸고, 썩기 일보직전이었다. 생새우는 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김장 재료 중 가장 고가다. 표고버섯은 흔하게 보이지만 건표고는 어디서 구하는 거지?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다. 깔끔한 맛을 추구하기로 했다. 그래도 육수에 건새우는 몇 개 넣을 걸 그랬나.



첫날 육수 끓이기.

육수는 끓여서 식혀야 한다. 들어가는 재료의 부피가 너무 큰가, 솥이 작아 보였다. 더 커다란 냄비가 없어 두 개의 솥에 나누어 끓였다. 각각의 솥에 배 하나, 양파 하나, 파 흰 부분 네 대, 다시마를 넣고 물 2리터씩 넣었다. 마늘은 레시피에 없어서 안 넣을까 하다 그냥 통마늘 다섯 개를 넣어줬다. 오래 푹 끓이면 좋은 줄 알았는데 오래 끓이면 쓴맛이 날 수 있다고 한다. 40분 끓여서 식혔다. 식힌 후 건더기를 건져낸다.


첫날 배추 절이기.

물을 넣고 소금을 퍼부었다. 물 10리터에 1킬로그램 소금을 녹인다. 배추를 4등분 해서 자른다. 칼질을 잘한다고 끝까지 칼로 배추를 자르면 배추 조각이 우수수 많이 떨어진다. 칼질은 배추 중간 정도까지만, 그리고 손으로 쪼갠다. 배추를 소금물에 담갔다 뺀 후 배춧잎을 켜켜이 뒤적이며 대충 소금을 뿌린다. 골고루 소금이 절여지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김장봉투에 넣는다. 너무 많이 넣으면 들 수 없다. 한 망에 김장 봉투 하나가 적당하다. 뒤집기도 옮기기도 편하다. 그러니 10 포기 용 김장 봉투는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래도 나는 10 포기 용 넉 장을 사 왔다. 다음부턴 중 자로 사 와야겠다. 얼른 절여놓고 퇴근해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드디어 퇴근이다!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토요일이다. 토요일에도 출근이지만 주말은 늦잠을 자기 마련이다. 늦은 출근 때문에 배추는 한 번 뒤집지도 못했다. 배추는 12시간을 넘어 13시간 푹 절여지고 있었다.


배추 세척

출근 후 김장봉투를 열었더니 배추가 팍 쪼그라들어 있었다. 헹굼 세척 3회 후 맛을 보니 너무 짜서 못 먹겠다. 4회 세척 때는 물에 푹 담가놨다. 배추에 절여진 소금이 물로 옮겨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천천히 헹궜다. 그렇게 물기 쪽 빠진 배추를 소쿠리, 채반에 하나씩 담아놓고 대기했다.


찹쌀풀 만들기

10 포기에 2컵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20 포기 양념이니 4컵이나?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찹쌀가루 네 숟가락을 넣었다. 아무리 불을 올리고 저어도 완성이 안 되었다. 불이 너무 작은가. 불을 올리고 찹쌀가루 두 숟가락을 더 넣었다. 찹쌀풀은 거품기로 천천히 저으면 멍울이 안 지고 곱게 잘 풀어진다. 뜨거운 냄비에 거품기를 넣고 손으로 살살 그냥 저으면 된다. 온기가 돌고 찹쌀풀이 풀어진다. 물과 만나 어우러지며 반투명한 고운 흰색으로 변한다. 걸쭉함이 내 맘에 들 때까지 냄비 속 마법의 풀을 저어주다 불에서 내려 식힌다. 풀을 쑬 때면 아이들 이유식의 첫 단계가 늘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찹쌀풀을 저으라고 하면 저희들은 그런 걸 먹은 줄은 모르고 이게 정말 풀이 나고 묻는다. 옛날 창호지 같은 걸 붙일 때 이런 풀을 쒔다고 하면 아이들이 놀란다. 엄지, 검지 손가락에 풀을 붙여 끈적끈적해보곤 신기해한다.



대형 스테인리스 대야를 준비한다. 양념을 만들 큰 용기가 필요한데 우리에게는 커다란 ‘스뎅 다라이’가 있다. ‘스뎅 다라이’는 오로지 김장을 위해 산 용기다. 어릴 적 김장철이 되면 우리 동네 가겟방에서는 플라스틱 대야 끼워주기 행사를 했다. 집집마다 플라스틱 대야 몇 개씩은 기본으로 가지고 구비하고 있었다. 김장철이 되면 욕조 같이 생긴 두툼한 빨간 대야에 한가득 고춧가루 양념이 담겨 있었다. 그 대야에 유해성분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모르던 시절이었다. 스테인리스보다 스뎅이 더 입에 붙었던 시절이었다. 대야는 세숫대야 아닌가? 대야보다 다라이가 익숙하던 시절이었다. 지금과 같은 건 많은 양념을 한꺼번에 버무릴 커다란 그릇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김장 양념 만들기.

얼마나 많아질지 가늠할 수 없다. 오랜 노하우가 축적이 되어야 그릇을 가늠할 수 있다. 고작 그릇이 아니다. 커다란 대야에 무, 갓, 쪽파, 무청을 넣었다. 어깨너비 두 개보다 아주 조금 작은 지름을 가진 대야,그 대야의 높이를 넘어 금세 산이 생겼다. 그 산에 뭘 더 넣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더 큰 것이 필요한 것인가. 내 김장의 범위는 지금까지 10 포기 내외였다. 올해 김장 15 포기는 너무 무리인 것일까. 그러나 나는 야채 산 위에 양념을 갈아 부었다. 붓고 부었다.


양념 갈기.

마늘 800그램, 그 산을 만들어 놓고 저울에 무게를 쟀을 리가 없다. 일 킬로그램에서 얼추 5분지 1을 남겼으니 800그램. 다진 생강 네 스푼, 육수를 부어가며 믹서기에 갈았다. 예전에는 마늘을 절구에 찧었는데 이제는 안 그런다. 육수가 없다면 갈기 힘들다. 첫날 끓여둔 육수를 붓고 후루루 갈았다. 멸치액젓 10포기용 한 통, 매실 두 국자, 새우젓 네 국자, 식힌 찹쌀풀, 고춧가루 보통 맵기 8컵, 안 매운 고춧가루 8컵을 넣고 섞는다. 섞은 다음 초록의 야채 산에 화산이 터지듯 붉은 물을 부었다.


멸치액젓은 10포기용과 100 포기 용이 있었다. 나는 15 포기인데 10 포기용 두 개를 사면 될 것 같지만 가격을 보고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 10포기 용은 삼천 원 대, 100 포기 용이 오천 원 대였다. 지난번에 남은 까나리액젓을 냉장고에서 쏟아 그 냄새가 얼마나 요동을 쳤는지 경험한 나로서는 액젓을 남기지 않고 다 쓸 생각으로 10 포기 용을 두 개 집어 들었다. 그러나 왠지 가격을 보니 밑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소금을 더 넣으면 되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냉동실에서 일 년 묵은 새우젓. 새우젓 작은 걸 한 통 사놓으면 김치를 안 하는 이상 쓸 일이 크게 없다. 가끔 계란찜 해 먹을 때 작은 숟가락 하나씩 넣었을 뿐이다. 양은 국자로 네 국자 정도. 명색이 그래도 김장인데 생새우도 안 넣는데 새우젓을 새로 사야 할까 고민하다 그냥 일 년 묵은 새우젓을 쓰기로 했다. 백 년, 천 년 묵은 것도 아니고 일 년인데 뭐. 새우젓은 냉동해도 냉동이 안 된다. 소금기 워낙 많아서 그런가 보다.


고춧가루는 올해 고춧가루가 워낙 안 매워서 지난해 보통 맵기의 고춧가루를 섞었다. 안 매워도 안 매워도 어떻게 하나도 안 매울 수 있는지, 초등학교 급식용으로 들어가는 그런 안 매운 고춧가루였다. 많이 안 심어서 다행이었다. 내년에는 보통의 고추를 심는 것으로 하자.


양파를 한 망이나 샀는데 양념에 양파를 갈아 넣을까 했다. 송송 썰어 야채로도 넣을까 했다. 배도 한 봉지나 샀는데 채 썰어 양념에 넣을까 했다. 그런데 오래 두고 먹는 김장은 양파, 과일 등을 많이 넣으며 배추가 물러진다고 한다. 그래서 꾹 참았다. 육수에 하나 넣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음식에 좋은 것을 넣고 싶으나 자제하는 것은 크나큰 인내심을 짜내야 하는 일이다.


그런 인고의 노력으로 스테인리스 대야에 한가득 양념 재료를 채웠다. 산으로 위용은 멋이 있으되 그것은 감상용이 아니므로 섞어야 할 때가 왔다. 나무 주걱과 고무 주걱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섞었다. 고춧가루가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고 나무 주걱조차 힘을 쓰지 못하고 부러질까 걱정이 되는 지경이었다. 양이 어마어마해 도저히 주걱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상태.


이제는 두 손을 걷어붙일 때였다. 새 고무장갑을 끼고 야채 산 깊숙이 손을 집어넣고 무채를 위로 올려가며 손으로 양념을 비벼줬다. 빨래하듯 강하게 치대는 것이 아닌 살그머니 양념을 어루만지며 골고루 양념이 야채와 어우러지도록 섞었다. 온 대야를 돌아다니며 발굴과 조화 속에 양념이 완성되었다. 산은 허물어지고 야채는 숨이 죽어 처음 양의 반도 안 되었다. 간수 뺀 천일염 네 줌을 훌훌 흩어 뿌렸다. 빨간 양념에 눈송이처럼 내려앉은 하얀 결정 소금을 다시 섞었다.


고무장갑은 이미 고무장갑이 아니었다. 양념범벅 고무장갑. 대야 속 빨간 양념은 고왔으나 양념 투성이 고무장갑은 덕지덕지 지저분하기만 했다. 손 하나를 빼려고 하면 난감했다. 양념이 붙은 장갑 낀 왼손으로 양념이 붙은 오른손을 장갑에서 꺼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습기 가득 찬 손가락 하나하나 고무장갑을 잡아 빼듯 당겨서 다섯 손가락을 분리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큰 동작으로 큰 힘으로 양념을 붙여가며 잡아 빼야 한 손이 자유로워졌다.


김장의 첫날부터 김장 김치에 짜파게티를 먹겠다 계획을 세우던 남편은 언제 김치를 먹을 수 있냐며 보챘다. 저녁에는 맛볼 수 있냐며 채근했다. 김장하는 날에는 으레 먹곤 하는 수육, 그런 걸 삶을 겨를은 없었다. 그 양념 속에서 배추 속에서 걸어 다니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장하고 장했다.


김장 통 씻기.

이건 전 과정 중 제일 하기 싫은 일이다. 통을 씻는 게 뭐가 싫은가 하겠지만 고무 팩을 일일이 빼서 씻고 그 고무가 빠져나간 틈에 수세미를 집어넣어 씻고 헹군 다음 말려서 다시 끼우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몇 개의 김치 통에 배추가 들어갈까 몰라 집에 있는 빨간통은 다 가지고 나왔으니 10개 정도의 통을 씻고 헹구었다. 크기가 커서 둘 곳이 마땅치 않고 행주로 물기를 제거한 후 마르기를 기다렸다.



무치기.

드디어 배추에 양념을 무쳤다. 배추를 하나 들어 사이사이 겹겹이 양념을 채워 넣으며 벌겋게 발라주는 일이다. 그럼 한번 맛을 볼까? 너무 짜다! 못 먹을 맛이다! 어쩌지? 어쩐지 언니가 와서 배추 꼴을 보고선 왜 이렇게 힘없이 축 쳐져 있냐고 했었다. 너무 절여졌나 보다. 비장의 무기, 반달 모양으로 썰어 놓은 무를 꺼냈다. 배추와 배추통 사이사이에 무를 끼워 넣었다. ‘무야 무야 소금을 먹어라.’고 빌며 환상의 짠맛이 만들어지기를 소원했다. 김치 통에 배추를 가득 채우고 꾹꾹 누르고 뚜껑을 닫았다.


뒤처리.

그렇게 네 통을 만들어 놓고 나니 양념의 반이 남았다. 깍둑 썰기한 무에 양념을 버무렸다. 앗차! 소금을 안 절였는데 괜찮을까. 마직막에 소금을 솔솔 뿌려줬다. 난 몰라. 이미 양념을 섞었는데 어떡해.


남은 양념은... 아주 많다.


짠 배추를 덜 짜게 하기 위해 무를 사러 잽싸게 달려갔다. 이미 깜깜해진 뒤여서 그랬는지 김장철이라서 그랬는지 바깥에 놓고 파는 다발무는 하나도 없었다. 작은 크기의 배추망 하나만 남아 있었다. 무는 매장 안에 있는 길쭉한 무 하나를 골랐다. 반달 모양으로 썬 무를 김장 통 사이사이에 박아 넣었다. 나는 이 무를 참 좋아한다. 시원하게 잘 익으면 좋겠다.



김장을 마친 후 더 사 온 배추 세 포기. 김장날 김장을 즐기고 싶은 남편을 위해 배추 한 포기는 겉절이를 만들기로 했다. 아삭한 식감이 좋은 겉절이는 소금에 잠깐만 절여도 좋다. 두 포기는 바로 먹을 막김치로 썰어 소금에 절였다. 겉절이와 막김치는 조그만 통에 한 통씩 담았다. 그리고 고춧가루 범벅이 된 남은 그릇들을 모두 설거지했다.



양념은 아직 남았다.


남편은 총각무 얘기를 하는데 요즘 총각무를 본 적이 없다. 마트 이곳저곳 기웃거려 봐야겠다.




김장은 덕지덕지 붙고 칠해진 빨간 양념 같다. 적응되지 않은 번잡함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친다. 힘들고 버겁다. 그래도 김장을 할 이유는 많다. 김치를 반찬 가게에서 사다 먹으면 우리 대식구는 매일 김치를 사다 먹어야 한다. 그 김치를 볶아 먹을 수 없다. 남편이 김치통을 옮기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김치만 있으면 밥을 먹는다는 남편, 볶음김치를 그렇게도 좋아하는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김치 동냥을 하러 다닌 것이 조금 미안했다.


어머님이 해 주시는 김치는 이제는 부담이 된다. 김치통을 돌려줄 수 없을 정도의 죄송함을 웃어른에게 가지게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 김치통에 내가 만든 김치를 넣어 되돌려줄 깜냥은 또 안 된다. 짜도 너무 짜서 누구 맛을 보여줄 수도 없다. 나도 몇 년 더 연마하면 김장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설마 평생 이렇게 덤벙대지는 않겠지. 나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나눔이란 짠 김치를 나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절이지 않은 깍두기를 나눌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애석하고 애석하다. 꾸준히 연마해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럼 양념도 남았으니 내일 배추 한 망 더? 한 망 세 포기 정도는 이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장은 그렇게 늘어만 간다.


오십견 중에도 감기 중에도 바쁜 가을 중에도 김장을 감행해 잘 마무리한 나의 노고를 치하하며 2025년 김장 대장정의 글을 남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년 거울을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