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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허덕이다가...

by 눈항아리


예쁜 날도 있었다.

평화가 계속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삶에 허덕이다 보니 안온한 그날들이 먼 옛날의 일 같다.

그 따뜻한 날, 초록의 풀밭, 꽃 피던 그날, 나는 그걸 잊었다.



마르고 푸석하고 거칠한 몸

간질거리는 목구멍에서

살살 성질을 긁어대는

귀찮고 성급한 간지럽힘이 느껴져

입에 평생 대지도 않던

생강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화하고 들큼하고 매콤한 기운이 퍼지며

잠시 평정된 점막이 금세 진정되었다.

잠시만 그랬다.

애석한 일이다.

쇳소리가 나는 기침을 내뱉을 때마다

횡경막이 왔다 갔다 하며 운동을 열심히도 해댔다.

뱃살 위 명치를 지나는 가로 방향의 근육에

근육통이 생겼다.

지속적으로 알이 배었다고 호소한다.

몸의 어느 구석이라도

운동을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플 줄 알았다.

앓으면 그뿐, 며칠 드러누으면 된다.

그런데 죽도록 아프지 않고

성질을 긁어대는 기침이 귀찮다.

진득하게 눌어붙어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징하다.

끈덕지다.


기침에 허덕이고

찬바람에 허덕이고

가을에 허덕이고

일상에 허덕이고

삶에 허덕이고

버둥거리며 발버둥 치는

나를 보면 안타깝다.

그리고 장하다.

끈질기게

그 삶을 부여잡고 있는 걸 보면

그래, 장하다.


예쁜 날도 있다.

말라비틀어진 잎새 사이에

씨앗이 빼곡하게 차 오른 것을 보며

그날을 기약할 수 있다.

열매를 품기 위한 숭고한 절제.

대지에 꿈을 퍼뜨리고 자유롭게 열린 껍질은

한 겨울의 마른 꽃 같다.

예쁘지 않은 날이 없다.

마른 너도 예쁘다.


나도 간곡히 마르고 싶다만...

기침을 아무리 해대도 마르지 않는다.

나도 숭고하고 싶다만...

나는 도대체 내가 뭘 품고 있는지 모르겠다.


10년 넘게 생강청을 만들었는데 생강차를 한 잔을 다 마신 건 처음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한 잔만 마신 게 아니라 두 잔을 마셨다.

생강차를 마시고 왜 사진은 부추일까. 요즘 찍어둔 사진이 빈약해서 그렇다. 그래도 이리 저리 엮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씨앗을 품은 마른 껍질이 예뻐 보인 어느날 아침, 출근길 계단앞에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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