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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05. 2024

데이빗은 멋져요

엄마는 잠자기 전 달님 동화책을 읽어줍니다. 전에는 날 꼭 안고 읽어 줬는데 이제는 달 같이 예쁜 복실이를 안고 읽어줍니다.


저는 달님 책을 유독 좋아했어요.


구름 아저씨 비켜 주세요.
달님 얼굴이 안 보이잖아요.



엄마가 이렇게 읽어주면 나는 달님을 따라서 얼굴을 찡그리곤 했지요. 내 얼굴은 찡그리기도 하고 활짝 웃기도 하는데 엄마는 나를 봐주지 않아요. 찌푸린 내 얼굴이 보이지 않나 봐요. 이제 난 달이 아니니까 달님 책도 달 같이 예쁜 복실이에게 물려줘야겠지요? 난 달보기 오빠니까 괜찮아요.


그래서 멋진 오빠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 <안돼 데이빗>에는 멋진 녀석이 나와요. 저는 그 아이가 좋아요. 달님은 복실이나 하라지요.



전 데이빗 처럼 멋진 아이가 되고 싶어요. 데이빗은 최고의 친구랍니다.


데이빗처럼
흙탕물 발자국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어느 날


웅덩이 물에 첨벙 뛰어들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날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지요.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장화를 신겨줘요. 장화보다 운동화가 좋은데 말이죠. 흙탕물에 발을 적시면 운동화 겉면에서부터 안쪽으로 스르르 빗물이 스며들어요. 천천히 시원해지는 발가락, 발바닥, 발목. 땅에서 올라오는 물의 기운을 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발을 첨벙거리게 됩니다.


엄마는 노란 우산도 챙겨줘요. 우산은 제발 안 쓰고 싶은데 말이죠. 하늘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나를 찾아온 하늘 여행자 빗방울이라니 안 만나볼 수가 없지요. 비를 맞고 첨벙거리며 뛰어다니는 건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는 절대 안 된다고 해요. 머리가 빠진다나요?  


제가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싱긋 웃으면 엄마가 환하게 웃어요. 저는 다시 달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장화도 우산도 좋아하게 되었어요. 비 오는 날은 엄마가 절 보고 웃는 날입니다.


그런데 복실이가 조금 더 커서 비 오는 날을 좋아하면 어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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