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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학교 간 아들을 기다리며

훈훈한 겨울날 오후에

by 눈항아리

일요일에 학교 간 아들을 기다립니다. 달복이와 복실이와 같이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서점에 갈까? 서점 근처에 차를 세웠지요. 서점은 문을 닫았습니다. 전 아쉽고 달복이는 좋아합니다.


학교 근처를 산책하기로 합니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교문 앞 보안관실은 닫혀 있지만 들어갈까 말까 가도 될까... 선뜻 교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 망설여집니다. 꼬마 둘이서 고등학교로 들어가는 제 옷을 잡아당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아이 복동이를 기다리며 바다와 가까운 소나무숲 벤치에 앉았습니다. 복실이, 달복이와 나란히 앉아 발을 동동 구릅니다. 제 짧은 다리는 의자 아래에서 달랑달랑 흔들립니다. 복실이와 달복이의 운동화는 땅에 닿은 채로 앞뒤로 흔들립니다. 뿌연 흙먼지가 솔잎 위로 마구 흩날립니다. 소나무 숲의 그윽한 향을 타고 콧구멍으로 먼지가 날아오릅니다.


쿨럭쿨럭. 웬 마른 흙내음이란 말입니까.



“엄마 편의점 가요! ”


“제일 가까운 곳으로 찾아봐. ”


달복이가 금방 찾았습니다. 7분 거리랍니다. 7분, 우리의 걸음으로 이 겨울날 걸어갈만한 곳일까요? 우선은 걸어봅니다.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보다 산책이 낫지 싶습니다.



숲내음을 맡으며 앉아있고 싶지만 아이들의 열기에 따라 움직입니다.


아들의 지도를 안내 삼아 걷습니다. 그러나 7분이 상당히 멉니다.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습니다. 500미터라는데 굽이진 골목 몇 개를 꺾어 다니며 걸었는지...


그런데 골목길 탐험이 은근 재미도 있습니다. 낯선 상점 이름을 살피며, 자갈 주차장에 세워진 차가 몇 대인지 담 너머를 살피고, 창가에 앉아 있는 모르는 사람들과 그들이 시켜놓은 음식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눈에 담습니다.


그러나 멀고 먼 길입니다. 모르는 길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길을 그저 따라갑니다. 다시 돌아가지는 말이 절로 나왔지만 끝까지 아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나는 의지의 어른이니까요. 기다릴 수 있습니다.


칭얼대며 따라오는 엄마와 여동생을 끌고 가는 우리 달복이. 달복이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대견합니다. 지도를 보고 이 추위에 어미와 여동생을 끌고 그 길을 가다니요. 먼 길 돌아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안 보여! 얼마나 남았어?”


계속 물어도 묵묵히 갑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목적지가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왜 고등학교 앞에는 편의점이 없는 겁니까! 사실 아들의 고등학교에는 매점이 있습니다. 편의점도 장사가 되어야 하니 사람들이 많은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전 난방용 아메리카노를 사 들었습니다. 이 추위에 아이스크림이라니! 그걸 들고 나와 가는 길에 먹습니다. 이 겨울에 이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면서 말입니다. 귀와 얼굴이 얼얼합니다. 콧물이 줄줄 흐릅니다. 제 손만은 따뜻합니다. 아이들은 찬 겨울에도 튜브 아이스크림을 빨아먹습니다. 손이 시리면 제 커피와 바꿔 들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엔 다시 달복이의 지도 앱을 켭니다. 골목길 말고 인도가 있는 큰길로 걸었습니다. 핸드폰 앱을 본다고 오토바이도 차도 안 보고 걷는 어린이를 위한 엄마의 배려입니다. 사실 아들의 고등학교 주변 지리는 빠삭합니다.^^



학교 앞까지 가기 전에 큰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더 걸릴 것 같다고 합니다. 어쩌지요? 어쩌기는요. 기다립니다.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며 잔뜩 얼어버린 아이들을 차에 태웠습니다. 엉덩이 난방을 틀어놓고 여전히 열심히 먹습니다. 시트에 질질 흘리면 혼내준다고 엄포도 놓았습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학교 교문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훈훈한 바람이 나오는 차 안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 커피는 홀짝홀짝 다 마셨습니다. 난방용이 아니라 시간 때우기용 음료였습니다.


땀내가 폴폴 납니다. 드디어 큰아들이 차에 탔습니다. 학교 축제 준비로 매우 바빴다고 합니다. 정신없이 물건들을 날랐다고 합니다. 반팔을 입고 가도 될 뻔했다며 땀내의 이유를 얘기해 줍니다. 참 혈기왕성한 아이들입니다. 고등학교는 요즘 축제 준비로 바쁩니다.


참 중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집 중학생은 게임 대회 참가로 매일 게임방에 가서 삽니다. 대회 연습이라고 하는데 마냥 연습만은 아닌 것 같고. 여하튼 매일 열심히 축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학생은 그래서 집에서 열심히 종일 게임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제 중학생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갑니다.


훈훈한 우리의 겨울날 에너지가 넘치는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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