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어느 날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에 탄 날 나는 아줌마가 되었다.
누가 나를 불러주기 전까지 나는 그저 나였다. 학생을 거쳐 아가씨가 되었다. 결혼하면서 아이가 생겼다. 아가씨는 아니니까 그날의 나를 굳이 부르자면 새댁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시골 장에 가는 길이었으니, 아이 둘을 안고 업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버스에 타고 나를 ‘아주머니’라 부른 고등학생을 만나면서 나는 아줌마 반열에 당당히 입성했다. 그런 기막힌 일이 내 생애 일어난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겠지만 유독 나에게는 그날의 억울함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나는 ‘아줌마’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말을 한 번 들었다고 아줌마가 되어버려 분하고 원통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다. 나는 절대 싫은 말이지만 사회적 이미지, 관계, 지위 등을 고려해 가장 적당한 단어였다. 그런 단어가 ‘아줌마‘ 하나라고 생각한 건 큰 오산이었다.
아침 장보기 시간이었다. 계란을 사러 마트에 갔다. 마트 앞은 농산물을 진열하느라 분주했다. 젊은이들이 아침부터 나와 추위에 고생하고 있었다.
젊은이. 이 단어를 쓰는 나. 내가 늙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을 뜻한다. 나 스스로 나이 듦을 인정하는 것 같다. 나는 마흔여섯 밖에 안 되었는데. 해가 넘어가도 아직 마흔 중반인데 왜 나는 스스로 나이 먹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게 문제인 것일까. 그러나 ‘젊은이’라는 말 같은 건 절대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다. 그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건가? 내 생각과 같이 몸이 늙어가는 걸까? 내가 인식하는 대로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든가 그런 마술 같은 일이 있는 건가?
늙어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나이가 들면서 아픈 곳이 생긴다. 기력이 달린다. 밤잠이 줄었다. 그래도 아직 저녁잠은 안 줄었다. 아이들이 나보다 키가 크고 몸집이 커진다. 머리도 커진다. 어느 때는 용돈을 안 받고 일부 돌려준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늙어간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늙어간다고 인지하는 것과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타인이 보기에 ‘젊은이’이기를 원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적당히 머리도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녀야 했을까. 어른들이 많이들 입는 황토색의 온몸을 가려주는 긴 패딩을 입지 말아야 했을까. 최소한 신발이라도 편안함이 주가 되는 것으로 고르지 말아야 했을까.
“어머님 뭐 드릴까요? “
상품을 진열하던 젊은이가 나를 보더니 그랬다. 어안이 벙벙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나이를 먹어봤자 이십 대인데, 아니 아니 이런 나이 많이 들어 보이는 사고는 집어치우자. 내 조카 뻘이구만, 무슨 어머님이고 자시 고냐. 하긴 내가 일찍 결혼했더라면 그만한 아들을 두고도 남았겠지만, 우리 집 아들딸은 10대에 불과하다고! 우리 애들이랑 열 살은 넘게 차이 날 것 같은 얼굴로 나를 ‘어머님’이라 부르다니! 고객님, 손님, 아줌마, 아주머니... 부를 말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 고르고 골라 최대한 공손하게 ‘어머님’이라 부를 일이 뭣이란 말인가.
‘어머님’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취한 듯 몽롱한 상태로 나는 잠시 정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곧 격에 맞게 절대 놀라지 않은 표정과 몸짓으로 말했다. 이럴 때 왜 연륜이 나오는 것인가. 그냥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곱고 고운 꾀꼬리 목소리, 낭창한 젊은 목소리를 들려줄 것을, 아쉽고 아쉽다.
“파프리카요.”
내가 파프리카를 사려고 했던 게 맞던가? 파프리카가 노랗고 빨간 저 주먹만 한 것이 맞던가, 파프리카라고 제대로 말한 것이 맞던가, 순간 생각했다.
나이의 내공이 느껴지는 조심스러운 말투, 떨리는 음성으로 나는 파프리카를 말했고 3980원을 계산한 후 영수증까지 챙겼다. 그리고 봉투에 파프리카 노랑 하나와 빨강 2개를 담아 잽싸게 마트 주변을 벗어났다.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어머님’이냐고!
씩씩 거리며 그러나 우아한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길가에 무수히 비치되어 있는 불법주차된 차들의 유리에 나를 비춰보곤 할 말을 잃었다. 딱 할머니 포스였다. 우리 가게 주 고객층 60대 여사님들이 주로 입는 보온용 덮개 같은 외투에 짧고 희끗한 머리를 한 천상 ‘어머님’이었다. 단아한 어머님.
“남편 내가 ‘어머님’ 같아? ”
“당연히 어머님이지, 그럼 아버님이야? ”
남편은 대답하면서 픽 웃는다.
십수 년 흰머리 염색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나와는 달리 까만 머리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남편이 얄밉기만 했다. ‘아줌마’에 이어 ‘어머님’이라는 말까지 들은 나와는 달리 ‘젊은 사장’으로 통하는 남편이다.
‘자기도 늙어봐. 흰머리 나고 아버님 소리 들어봐. 그때가 오면 기분 팍 상하고 내가 늙어가는가 보다 생각이 들걸? 얼마나 억울한지 알기나 해?’
아줌마 보다 강력한 말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살면서 더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게 되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로 받아들이는 나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어색하기만 하다. 나는 받아들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 나는 오늘 ‘어머님’이 되었다.
‘어머님’이란 학원 선생님,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의 어머니를 부를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들어보기는 많이 들어봤다. 선생님과 학부모 관계에서 쓰는 호칭인 ‘어머님’과 나이 지긋한 중년 부인을 공손하게 부르는 말인 ‘어머님’은 천지차이, 격이 전혀 다른 말이다. 나는 품격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안 불려도 좋다. 그저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젊은 사람이고 싶다!
<오늘 나를 정중하게 ‘어머님’이라고 부른 남자 직원에게 전하는 말>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늙음이 숙성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답니다. 내 아이의 나이가 스무 살이 넘고 서른 살이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나도 젊은 사람들에게 어머님이라고 불릴 테지요. 그때 그렇게 불러주세요. 손님, 고객님 그 말들이 어색하다면 호칭을 굳이 써야 할까요?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요? 나는 아직 존중받아 마땅한 나이 지긋한 ’ 어머님‘이 아니랍니다. 그저 정중한 태도면 족합니다.
그대 덕분에 40대의 어느 날 나는 나이 지긋한 ‘어머님’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