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마주앉다

아들에게 배우는 체스

by 눈항아리

마주 앉는다는 것


체스를 하려면 상대의 반대편에 앉아야 한다. 탁자 중앙에 체스 판을 펼치고 양쪽에 앉는다. 체스를 두려면 시선은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나는 그렇다. 나의 시선은 체스 판에 고정되어 있다. 말을 움직이기 벅차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 달복이의 시선은 마구 움직인다. 체스 판에서 한 발 물러서 세상 만물의 흐름을 구경하는 듯한 느긋함이 묻어난다. 아들의 눈은 탁자 아래로 가 있다. 내 얼굴을 보고, 멀리 동생이 보고 있는 영상에 꽂히기도 한다.


내가 기물을 움직이기 위한 생각의 체스판을 펼치는 동안 달복이는 한눈을 판다. 핸드폰을 몰래 본다.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눈을 가진 엄마를 너무 얕봤다.


‘너 나한테 딱 걸렸다, 이 녀석. 여유를 부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아들은 분명 선을 넘었다. 체스 말에서 시선을 강탈 탕한 초심자의 눈에서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체스 판에 미련을 뚝뚝 떨구며 감정의 불길로 기화를 시켜가며 얼른 핸드폰을 압수했다. 엄마의 눈치가 머리 정수리 양 옆에 레이더처럼 달려 있다는 걸 모르는 아들이다.


마주 앉는다는 건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

상대와 함께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체스가 사람을 가르친다. 절대 아들이 나에게 집중을 안 한다고 투정 부리는 게 아니다.


아들이 체스에 집중하지 못하는 건 이유가 있다. 나의 실력이 영 늘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 없는 말들이 전장에 마구 뛰어다니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건성으로 앉아 있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그저 아들과 체스를 둔다는 명목으로 알맹이 없이 진심은 쏙 빼놓고 기물만 움직이며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는 걸, 그 진실을 모두 보고 있는 것인지도. 정말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는지 나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할지도 모른다.


내 숨은 속내까지 아들이 알 리가 있나? 있다. 실력이 전혀 안 느는 걸 똑똑이 아들이 알기 때문이다. 체스 공부를 한다며 말 움직임만 한 번 배우고 나서는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척하면 척이지. 말을 마구 움직여서 자살골 넣듯 귀한 말들을 상대에게 내주는 게 어디 한 두 번이어야 말이지. 내가 생각 없이 말을 움직이려고 하면 언제나 나의 편 복실이가 내 손을 잡고 생각을 좀 더 하라고 만류할 정도다.


나는 마주 앉은 상대에게 진심을 보여줬나?


마주 앉기 전에 먼저 나의 진심을 확인해 봐야 한다. 나는 마주 앉은 상대를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물어봐야 한다. 나는 체스를 빨리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뜨끔.


진정한 승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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