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배우는 체스
배움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복습은 늘 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만큼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때로는 실수할 수 있다. 때로는 상대의 실수가 나에게 운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언제나 중요하다.
아들과 체스를 두면서 배우는 것들이다. 삶의 진수를 뽑아서 배운다.
오늘도 역시나 특별한 것을 배웠다. 나의 패를 보이지 말라. 경쟁 상대에게, 상대가 나보다 실력자라면 나의 패를 최대한 가려야 한다. 실력자는 초보의 전술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조금 배웠다고 자만하다 큰코다친다.
실전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들은 전투 중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말이 움직이는 체스판에서 스스로 터득하면서 배워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을 토대로 펼쳐지는 대결은 여전히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나와 체스를 두는 아들의 수준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들도 체스를 접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아들도 어린이 체스 책을 보고 체스를 배웠다. 아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 생초보인 나는 아들도 나와 실력이 그만그만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 판단 실수를 했다. 배움은 나를 성장키는 동시에 자만심을 키운다.
어린이 체스 책에서 ‘스콜라메이트’를 익혔다. 폰 두 개를 움직이고 비숍과 퀸을 전력질주 시켜 4수 만에 체크메이트를 하는 방법이다. 배우면 써먹어야 한다. 그리고 배우면 스승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
“달복아 엄마 스콜라메이트 배웠어!”
칭찬해 달라는 건지, 다음 판을 기대하라는 건지... 왜 나는 아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한 것인지... 달복이 아들은 별 말이 없었다.
게임은 시작되었고 아들은 내 수를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맑고 밝고 선명한지 몰랐다. 나의 4 수를 미리 다 봤으니 말이다. 아들은 적진으로 뛰어든 내 퀸을 나이트로 잡아버렸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가관이다.
“엄마 상대가 눈치챘다면 쓰면 안 되는 거예요. 스콜라메이트는 ‘뉴비’한테나 먹히는 거라고요.”
아들에게 ‘뉴비’를 배웠다. 몇 번이나 아들에게 들은 말인데 여태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나 보다. 체스를 처음 시작하고 며칠 안 되어서 시작하자마자 체크메이트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 그때 스콜라메이트 당한 게 아니었나 싶다.
책으로 스콜라메이트를 배웠고 아들에게는 ‘뉴비’를 배웠다. ‘뉴비’는 이제 막 시작해서 아직 서툰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인터넷, 게임에서 쓰는 용어다.
한 판을 또 정신없이 둔 후에 책을 뒤적여 스콜라메이트를 찾아 다시 꼼꼼히 읽었다. 찾았다. 분명히 나와있다.
“이런 방법은 흑색 진영이 위협을 눈치채지 못했을 때나 성공할 수 있다.”
왜 처음 배울 땐 이런 유의점이 안 보였을까.
나는 하수 중 하수였다. 나의 패를 떠벌리고 작전에 임하다니.
겸손에 대해 배웠다. 떠벌리지 말자.
아들에게 배우는 체스는 계속되고 있다. 방학은 길고 체스판은 널려있다. 요즘은 복실이 딸아이와도 일상으로 둔다. 어린이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귀찮지만 나와한 판 둬 준다는 느낌으로 시작해 최선을 다해 나를 이겨먹으려고 한다. (‘뉴비’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다) 나는 그 속에서 나를 낮추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건 패배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마음의 준비이다. (결코 ‘비굴모드’가 아니다.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