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까를 끌고

by 눈항아리

시멘트 바닥은 차고 딱딱하다. 바퀴 두 개 달린 미야까는 탄탄한 길에서 탄력을 받아 잘도 굴러간다. 명희네 미야까는 다른 집 미야까보다 날렵하고 가볍다. 명태 일을 하는 집에서 미야까 하나 정도는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골목길을 누비며 명태며, 다라이 등을 실어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명희네 미야까와 비교해 다른 집 미야까가 더 무거운 이유는 뭘까. 다른 집 미야까는 물건을 더 싣기 위해 바퀴 근처, 바퀴 위까지 쇠막대를 용접해 붙였다. 그리고 미야까 바닥판을 더 튼튼한 것으로 썼다. 뒷막이가 있는 미야까도 있다. 더 많이 싣기 위해, 무거운 짐을 싣기 위해 미야까는 더 무거워졌다. 짐을 가득 실은 육중한 미야까를 미는 건 보통 건장한 동네 어른이다. 명희 자매를 위한 배려였을까, 명희네 미야까는 다행히 가볍다. 그저 적재가 많이 되는 것보다 날쌘 미야까를 선호한 명희 아버지의 현명함 때문이었을까. 명희네 미야까는 힘들이지 않아도 잘 굴러간다.


수송 능력 말고도 미야까가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능력은 핸들링이다. 미야까는 꺾어지는 골목길, 구불구불한 길, 울퉁불퉁한 흙길을 수시로 돌아다녀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전거를 피하고, 흙구덩이나 물웅덩이를 지나가면 휙 틀어지는 방향을 고려해 갑작스러운 멈춤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까만 고무바퀴는 너무 무거우면 안 되고 바람이 빠져 있어도 안 된다. 명희는 한 번도 미야까 바퀴에 바람이 빠진 걸 못 봤다. 그건 다 명희 아버지의 근면함 덕분이다. 명희 아버지는 뚝딱뚝딱 일하는 도구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명희네 미야까는 밀고 가는데 어른의 힘이 필요치 않았다. 미야까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스르르 미끄러져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엔 숙련된 기사의 운전 솜씨도 한몫 거들었음이 분명하다. 명희는 아직 좀 미숙하지만 명주는 손 하나로 미야까를 몰 수도 있었다. 아래위 균형을 잡고 다라이가 엎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물건을 싣고 디귿자의 쇠로 된 손잡이를 지그시 아래로 누르고 앞으로 몸과 발을 자연스레 옮기기만 하면 된다.


좋은 미야까를 소유했다는 건 명희의 자부심이었다. 미야까도 ‘카’니까, 차를 끌고 다니 것처럼 미야까를 운전하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가르며 홀로 운전할 때면 홀가분하고 기분전환도 되었다. 동네 친구들은 가볍고 핸들링 좋은 차가 없어서 못 끌고 다니는 것이 분명하다고 명희는 가끔 생각했다.


그런 늘씬하고 잘생기고 성능이 좋은 미야까에게도 난관이 있다. 그건 사실 미야까에게 힘든 일이 아니고 국민학교에 다니는 소녀들의 고난이라고 봐야 한다. 벽에 기대놓은 미야까를 내릴 때가 그렇다.


미야까는 좀 전까지 명희의 집 담장에 서 있었다. 주차라고 보면 되겠다. 미야까 두 대가 교차로 지날 갈 수 있는 넓은 골목이지만 배려를 아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선 누구 하나 미야까를 그냥 골목길에 두는 법이 없다. 다 쓴 미야까를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담장에 세워 놓는 건 말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규칙이다. 내 것이라고 절대 가지고 가지 말라는 표시이기도 하다. 넓은 골목길을 지나는 오토바이나 자전거 때문이기도 하다.


아주 가끔 규칙을 안 지키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명희는 어느 날 밤 가겟방에 심부름을 갔다가 ‘벽 주차 규칙’을 지키지 않은 미야까를 만났다. 명희는 어두운 골목이 무서웠다. 정신없이 달리다 그만 미야까에 쿵 박고 나가떨어졌다. 쑤시는 허벅지를 부여잡고 잽싸게 일어나 귀신아 날 살려라 하고 외치며 마구 달렸다.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선 다음에야 미야까 주인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아픔과 어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잊고 있었던 심부름이 퍼뜩 생각이 났다. 다마네기!


동네 사람들은 미야까의 주차 규칙을 대부분 잘 지켰다. 명희가 심부름 갔다가 미야까에 치였다는 소문이 동네에 난 것도 아닌데 그 일 이후로 한 번도 미야까에 받친 적은 없었다. 명희가 밤 심부름을 안 다닌 것도 이유면 이유다. 밤은 무섭다. 가족들도 명희가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걸 다들 안다. 명희가 다마네기는 싹 잊고 눈물 범벅이 되도록 울며 씩씩거리며 우당탕거리며 들어온 걸 다들 안다. 넘어져 다친 명희야 늘 그렇듯 별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심부름을 잊은 일이 더 컸다. 다마네기가 급하게 필요했을 수도 있고, 심부름이 사이다나 막걸리 같은 거였다면 다 깨뜨리고 엎지르고 왔을 거라는 지나친 염려 때문에 밤 심부름 자격을 박탈 당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명희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명주에게는 귀찮은 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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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발견하기 위해 귀 기울이다 자연스레 글쓰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자연, 시골생활, 출퇴근길,사남매의 때늦은 육아 일기를 씁니다. 쓰면서 삶을 알아가고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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