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3화
엊저녁 명희는 어머니가 싸주는 도시락을 명태 덕장으로 날랐다. 아버지가 야간 근무를 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반찬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밥그릇만큼은 유심히 살펴봤다. 제삿날에나 쓸 법한 엄청 큰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밥, 중요한 건 밥그릇에 딱 맞는 뚜껑이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철 그릇은 엄청 뜨거웠다는 것이다. 밥이 온기를 잃을까 철 밥그릇은 딱 맞는 보온통에 들어갔다. 밥그릇도 컸지만 보온통은 명희 얼굴만 했다.
밥통을 가슴에 꼭 안고 아버지가 야근을 서는 강변의 덕장으로 향했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천막으로 겹겹이 싸맨 막사는 햇볕 한 줌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중앙을 차지한 연탄난로가 따뜻한 온기를 피워주고 있었다. 난로 위에는 때 묻은 커다란 황금색 주전자가 버둥거리며 씩씩거리며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주전자 주둥이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타고 비릿한 냄새가 진득하니 주황 형광등 불빛을 따라 공중에 둥둥 떠다녔다. 하나밖에 없는 나무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황소바람이 막사 안을 한 바퀴 휘돌아 문이 닫히기 전에 얼른 나가버렸다. 묵묵하게 배어있는 공기 중의 비린내를 씻어 낼 새도 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문틈으로 겨울의 바닷바람을 빼닮은 강바람이 스며들어왔다. 그걸 막으려고 문도 두세 겹 천막 옷을 입었다. 막사는 꼭 아버지의 보온밥통과 같았다. 따뜻해야 하는 밥통과 잠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식어버리고 마는 모진 밥통과 잠자리.
명희는 도시락만 얼른 막사에 두고 아버지를 따라 나왔다. 막사 안에 있는 것보다 한 데가 오히려 더 좋았다. 아버지는 시멘트 수조 주변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방만 큼 크고 높은 수조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어느 날은 그곳에 꽝꽝 언 원양태가 들어가 있었다. 밤 근무를 서는 날 밤새 수조에 물이 넘치지 않게 지키며 얼음 명태를 녹이는 게 야근 직원의 임무다.
야근은 때때로 돌아왔다. 그러나 야근을 안 하는 날도 아버지는 새벽 3시가 안 되어 집을 나섰다. 명희 아버지 같은 남자들은 힘쓰는 일을 한다. 명태를 나르고 옮기고, 차에 싣고 내리는 일을 한다. 가장 힘든 일은 아무래도 수조에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명희는 생각했다. 북태평양 바닷속 얼음같이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니까. 아버지의 몸이 발부터 서서히 얼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수조의 깊이가 워낙 높아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는 온몸을 다 바쳐 명태를 건져 올린다. 맨몸으로는 어림없는 일이고 가슴까지 올라오는 방수가 되고 장화가 달린 멜빵바지를 입어야 한다. 명희는 아버지의 가빠(가슴까지 올라오는 방수가 되고 장화가 달린 멜빵바지) 입은 모습이 좋았다. 아버지의 가빠 입은 모습은 슈퍼맨 같았다. 우레맨, 배트맨, 슈퍼맨 같은 슈퍼 히어로는 특별히 제작된 멋진 옷을 입으니까. 아이스맨이라고 이름도 생각해 놨다. 아이스맨 아저씨들은 모자도 맞춤으로 쓴다. 귀를 덮고 창이 있는 방한모자다.
명희와 명주는 새벽부터 일어나 미야까를 끌고 아버지가 일하는 명태 덕장으로 가는 길이다. 큰길을 지나왔고 이제 더 큰길, 버스가 지나다니는 도로 위를 걷는다. 낮은 오르막길을 따라 미야까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당당히 달린다. 꽤 길지만 다음번 만나는 험한 비해선 양반인 길이다. 언덕 정상에 올라 신리천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를 한 번 둘러보고, 바다로 향하는 언덕길을 한 번 바라보고, 깎아지른 듯 가파른 벼랑길 같은 까만 어둠에 휩싸인 내리막길을 바라본다. 정상에 올랐으니 이제 내려갈 길이 남았다.
신리천을 가로지르는 큰다리는 명희가 학교에 갈 적에 건너는 다리다. 다리에 서면 푸른 바다가 보인다. 반대로 서면 물길을 따라 서쪽 끝에 걸린 산과 하늘이 보인다. 대관령 등줄기다. 첩첩산중 태백준령의 등줄기 또한 바다처럼 정갈하고 푸르스름한 기운을 품고 평평하게 이어진다. 산은 푸르스름한 정적인 청색의 기운을 품었고 바다는 동적인 청색의 기운을 품었다. 그건 학교 오갈 적에 나 보는 푸른 기운이다. 밤은 산과 바다의 푸르름을 모두 집어삼켰다. 어둠이 집어삼킨 풍경 속으로 강바람과 바닷바람과 산에서 들판을 향해 달려오는 찬기 가득한 바람이 모두 모여 휑하니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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