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명태 04화

소설 <명태>를 쓰고 있다 3

<명태> 3 덕장은 활기 돋고, 후기

by 눈항아리

삶을 쓰는 건 아픈 일이다.


수많은 아픈 일 중에 안 아픈 일을 어렵게 하나 골라내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안 아픈 일, 아름다운 것을 고르기 위해 수많은 아픈 일들을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픈 날들을 직시하고 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척 지루했던 하루하루를 들여다 보고, 초라한 내 모습을 바라보고 힘 없이 운명에 순응해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하루하루 별 의미 없는 순간순간에 특별한 의미를 괜히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함을 가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과장을 알기 때문이다.

잊힌 날들의 곪은 상처를 후벼 파야 하기 때문이다.


글 쓰는 것이 어렵다는 걸 느끼는 나날이다.


북대서양에서 펄떡이는 <대구>를 읽다 퍼뜩 잠이 들었다.

잠깐 졸음에 미야까를 끌고 가는 나를 보았다.

흙길 오르막을 오르는 나를 보았다.

그런데 내 뒤에서 오르막을 오르는 걸 도와주러 오는 누군가를 설핏 보았다.

그건 아버지였는지, 함께 일하는 아줌마였는지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힘들었던 순간에도 늘 내 옆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건 분명하다.


그냥 꿈결에 그렇게 느낀 것일까.

누군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닐까.

기억이란 불분명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위기 하나만을 기억하고 장면 하나만을 기억해 내기도 하니 말해 무엇할까.


그런데 기억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태어나는 것처럼 나타난다.

냇물을 기억하면 냇물의 속살까지 보이는 법이다.

정말 기억은 기억을 부르는가 보다.

강 건너 풍경까지 어느새 마음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어린 나는 강 건너 항구를 돌아 어디에까지 갔었는지 항구마을 어디에 골목골목을 누비며 놀러 다녔는지.

강 건너 들판에 갈대만큼 키 큰 달맞이꽃이 피었던 것도 기억나고,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 물이 깨끗할 적엔 멱을 감았던 그 냇물의 물길의 흐름도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잠자면서도 기억이 떠오르다니 정말 못 말린다.

겨울 새벽 이야기를 하면서 달맞이꽃이 떠오르다니.



남편에게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하다 보니 냉동 블록으로 꽝꽝 언 명태를 수조에 넣었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몇 번, 하차하는 것을 본 대로 말했다.

생각은 안 해봤다. 왜 명태가 얼어 있을까?


남편은 살아있는 명태를 손질하는 게 아닌가 궁금해했다.

나는 원양태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그저 먼바다에서 잡아오니 오는 동안 보관을 위해 잡자마자 냉동하는 것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찾아본 결과 70년대, 80년대 명태 황어기를 지나,

90년대는 이미 명태 어획량이 확 줄어 먼바다(원양)에서 잡히는 명태를 수입해서 들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글을 쓰고 기억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아가고 배워가고 있다.

때로는 내가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은 늘 아픈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아팠지만 나와 같이 힘겹게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화자와 작중 인물의 관계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나.

그러나 화자의 눈으로 조금은 객관적으로 어린 명희와 그 주변을 살피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글쓰기 시간이다.


객관적인 눈. 다음 글에서는 더 객관적인 화자의 눈으로 어린 명희를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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