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명태>4
명태 내장을 한 다라이 싣고 언덕을 오른다. 앞에 선 명주는 손잡이 안으로 들어가 미야까를 끌고 명희는 뒤에서 민다. 가파른 언덕을 함께 오른 자매는 언덕 위에서 다시 나란히 섰다. 그리고 새벽의 어둑한 길을 다시 밟아간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큰길을 걷고 어둑한 동네 골목으로 들어선다.
명희네 동네는 작은 계획도시와 같은 형태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지어졌다. 그 목적이란 서민들에게 주택을 분양하기 위함일 텐데 명희는 명태 일을 시키기 위해 탄생한 마을이라 늘 생각했다. 100여 호가 넘는 집들은 바둑판처럼 빼곡하게 붙어있다. 일렬로 늘어서 골목을 따라 집들이 줄지어 있고 대문에 앞에 서면 옆집 대문이 보인다. 주 골목 다섯은 남북방향이고, 가로지르는 동서 방향의 골목은 딱 하나다.
명희네 동네엔 명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골목을 누비는 미야까가 수시로 명태를 실어 나른다. 봄여름 가을 마른 명태(황태 포)를 만드는 집들이 대부분이고 겨울이 되면 한 집 건너 한 집서 창난을 추린다. 다른 집 사정은 마당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으나 창난 장사가 오면 누구네 집에서 창난을 추리는지 다 알 수 있다. 다만 마당에서 일을 하는지 집 안 어딘가에서 하는지 누가 누가 일을 하는지 모를 뿐이다. 집집마다 대문 높이는 얼마나 높은지 두 짝 대문만 한 길이의 길쭉한 마당을 명희 같은 꼬마는 들여다볼 재간이 없다. 친구들도 추운 겨울에는 밖으로 안 나다닌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담벼락 너머로 옆집에서 부부 싸움하는 소리까지 다 들리지만 대문 열어놓고 사는 집은 없다. 도둑이 들었다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리기도 했다. 명희가 가본 동네 다른 집은 몇몇 친구 집과 앞집, 뒷집, 옆집 정도다. 명희가 가 본 집들은 어김없이 명태를 했다. 겨울 명태가 아니면 마른 명태를 꼭 했다. 그러니 명희는 자신처럼 집에서 명태를 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누구도 방학에 집에서 명태를 했다는 아이는 없었다. 눈싸움을 했다는 그림을 그려오고 썰매를 탔다거나 눈사람을 만들었다고도 했다. 명희도 명태 이야기는 눈곱만치도 안 꺼냈고 목도리를 둘러쓰고 눈밭을 달리고 골목길에서 눈썰매를 탔다고 발표하곤 했다.
동네 집들은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 세월이 지나며 조금씩 고쳐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방 두 칸, 거실, 부엌, 마루와 마당, 마당에 속한 장독대, 마당 한편에 있는 야외 화장실 이렇게 단출한 구조다. 그중 실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방 두 개와 거실이 전부다. 부엌문을 열고 나가면 신발을 신어야 했다. 부엌문 정면에는 가스레인지가 있다. 가스레인지 옆으로 수도가 있고 오른쪽 구석 끄트머리에 찬장이 있다. 문 왼쪽으로는 연탄보일러가 있었다. 종일 꺼지지 않는 연탄보일러의 온기가 지붕까지 닿는 넓은 창고 같은 공간에 온기를 퍼뜨렸다. 그러곤 곧장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부엌이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수도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신 벌건 연탄이 데워주는 뜨거운 물을 받아 사용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엔 나무를 떼는 가마솥이 있는 부엌이었으니 연탄보일러가 돌아가는 건 꽤나 획기적인 일이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 집은 다들 바닥 보일러가 들어오는 입식 부엌으로 바뀐 지가 오래였다. 화장실도 밖에 없고 집 안에 있었다. 명희는 부엌은 하나도 안 부러웠지만 수세식 변기만은 부러웠다. 아버지 베개만 한 크기의 구멍이 바닥에 뚫려 있고 묵은똥은 하나도 안 보이니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추운 겨울날 밖에서 볼일을 안 봐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명희는 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마다 명주를 대동해 화장실 앞 마당에 서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화장실엔 전등불이 없었다. 더듬더듬 화장실에 발을 들여놓고 까만 구멍으로 발이 빠질까 봐 겁이 난 명희는 희미한 달빛이라도 새어 들어오라고 화장실 문을 빼꼼 열어 놓았다. 구멍을 피해 시멘트 바닥에 자리를 잡고 쭈그려 앉아서 언니 명주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채근했다. 화장실에선 정말 귀신이 나타나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말을 걸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깜깜해서 빨간색과 파란색을 구분이나 할 수 있을는지, 명희는 그것이 궁금했다.
부엌에서 거실을 통해 마당으로 나가는 미닫이문을 열면 방 두 칸과 거실의 길이를 합친 만큼 기다란 마루가 펼쳐진다.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마루 위 긴 처마 밑에는 깎은 감, 옥수수, 무청 시래기가 매달렸다. 운치 있는 먹거리와 어울리지 않게 차고 딱딱한 마루는 회색의 시멘트다. 마루 위엔 누런 장판이 깔려있다. 비가 오면 장판 위로 비가 들이치고 눈이 오면 눈이 들이쳤다. 어느 집은 마루의 끝에 벽을 세우고 새시 문을 달기도 했다. 마룻바닥에서 온기가 올라오지는 않아도 겨울바람 정도는 충분히 막아줬을 테다. 명희네 마루에는 문도 벽도 없다. 뻥 뚫린 말 그래로 고즈넉한 한옥집의 대청마루의 정취가 느껴진다. 겨울의 정취. 바람이 들이치고 겨울의 찬 기운이 오롯이 느껴지는 정취다. 탁 트인 마루는 밖이라 해도 무방하다. 단 하나 지붕이 마루 끝까지 비를 막아준다. 바람이 부는 날이라면 비가 마루 안쪽까지 들이치지만 겨울날엔 눈이 조금 흩날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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