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명태> 5
명태는 버릴 것이 없다니, 거짓말이다. 거의 다 먹는다는 말이다. 사람이 꾸역꾸역 다 먹는다는 말이다. 얼마나 먹을 것이 없으면 명태 창자까지 다 젓을 담아 먹었을까. 먹을 것이 많은 요즘에는 왜 창난젓이 없어지지 않았을까. 식습관은 오랜 역사와 환경에서 형성되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 민족의 특별함이라 하자. 명태를 얼리고 녹이고 말리고 두드리고 다양한 젓갈을 만들어 먹는 우리 민족의 특별함.
그러나 그 특별함에 속한 명태도 버릴 것이 있다. 똥을 안 싸는 생물이 있을까. 밥을 먹고 에너지 백 퍼센트의 효율을 낸다면 혹시 모른다. 그런 엄청난 효율은 과학자들도 난감한 문제가 아닐까. 그러니 무엇이든 버릴 것이 남는다. 명희가 창난을 추려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모든 명태는 늘 똥을 싸는 중이다. 배출의 기로에 놓여있는 것이다. 아무리 굶은 명태라도 그렇다. 소화가 안 된 것은 위 속에서 형태가 남은 채로, 소화가 더 된 것은 창자 속에 잘게 부수어져 배설되기 위해 내려가는 중이다.
사실 명태는 제 몸을 살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똥을 만들기 위해 창조된 생물은 아닐까. 소화라는 것은 지구상에 꼭 필요한 똥을 얻기 위한 신의 장치인지도 모를 일이다. 명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딱히 똥을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신이 배출물, 똥 같은 걸 바라고 기대하고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똥을 버릴 때 마음을 조금 가볍게 만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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