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정한 오픈 마인드

뚜껑 열린 날

by 눈항아리

얘들아 엄마가 콩나물 불에 얹어놨어.

시간 되면 저절로 꺼질 거니까 절대 뚜껑 열면 안 된다.

건들지 마, 알았지!

분명 나는 신신당부를 했으나,

나의 절절한 외침을 못 들은 아들이 하나 있었으니.

아이가 하나도 아니요, 둘 도 아니요,

셋도 아닌, 넷이라서 벌어진 불상사.



다들 깨어있었으나 딱 하나 둘째 녀석 복이가 잠든 걸 몰랐다.

점심밥을 먹으라고 그렇게도 불러댔는데

모두 식탁에 앉았으나

하나가 없었다.



겨울 방학 동안 밤잠을 줄이고 낮잠을 선호하는 녀석은

비몽사몽간 꿈결에 가까웠나 보았다.

일요일에 안 깨우면 오후 3시까지 늘어지게 잠만 퍼질러 자는 녀석을

내가 너무 얕본 것이다.


엄마 바쁘니까 밥 줄 때 먹어.

점심 장사 전에 밥 준비를 해 놓고

부리나케 밥 몇 술을 욱여넣고

아들들을 줄줄이 식탁에 앉혀놓고

오지 않은 아들의 밥을

퍼 놓으면 식을까 안 식을 까 걱정하고

남은 반찬은 랩으로 씌울 새 없이

비닐을 후르르 뜯어 덮어놓고

밥통 앞에 주걱도 고이 놓아주고

딱 봐도 먹을 것을 주르르 준비해 뒀건만.



우리 둘째 복이 아들은

잠결에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간 토끼처럼

몽롱한 상태로 스멀스멀 잠결에 기어 나와

주방에서 먹거리를 뒤지고 다니는데,

딱 봐도 폴폴 끓는 냄비가 수상하여

뚜껑 손잡이를 열어보고, 콩나물은 안 먹을 테야, 하며 꾹 닫았다.

뚜껑 여는 그 손을 봤으면 당장 엄한 소리를 쳤겠지만

못 봤으니 어쩔 것인가.


여섯 식구가 점심을 다 먹고 나서도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일도 중하지만 먹은 설거지도 내버려둘 수 없어,

짬을 내 주방을 다시 방문하였으니,

바쁜 손을 놀려가며 빈 그릇을 정리하고 거품질을 해대고

물줄기를 튀겨대며 설거지를 하는데

오른쪽으로 슬쩍 보니

웬걸 밥통 뚜껑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아닌가!

연속타를 얻어맞고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아들아! 밥을 펐으면 밥솥 뚜껑을 닫아야지!

뚜껑 닫는 걸 맨날 잊어버리면 어떡해!”

고래고래 소리를 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밥을 먹고 또 누워서 그새 잠이 들었구나 생각하며

열불을 삭히며 물방울을 더욱 튀겨대며 설거지를 마쳤는데.


대체 이미 열린 뚜껑은 어쩔 것인가.

이미 열린 콩나물 냄비이고,

이미 한 시간 넘게 열어놓은 보온밥통인데.

풀 죽은 콩나물 하나를 건져 맛을 보니

비릿하나 짭짤하니 먹을만하고.

열린 밥통 밥알은 마르고 딱딱해져 어찌할까 고민하다,

열린 마음으로 마른 밥을 식은 밥 삼아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래, 돌덩이 같은 그 밥을 저녁에 볶아먹으면 되겠다.



분이 삭지 않아 둘째 아들 복이를 찾으니

아들은 잠자는 것도 아니고

2층에 있지도 않았다.

언제 도망을 간 것인지,

밥 먹고 바로 튄 것인.

어디로 간 것인가 하였더니

화장실에 들어앉아 문을 안 연다.

콩나물 솥뚜껑은 풀쩍풀쩍 열어젖히고

밥솥뚜껑은 잘도 열어놨으면서

내가 화장실 가려니

화장실 문은 잡고 놓지를 않는다.

이 녀석아! 빨리 안 나와! 문 열어!

외치고 싶지만,

볼일 보는 아들에게 차마 큰 소리는 못 치고.

화장실에서 한참 머물다 나온 아들에게

슬며시 가만히 아름답게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근엄하게 넌지시 건넨 말,

“아들아 밥을 푸고 뚜껑을 닫아야지. ”



콩나물 솥뚜껑은 말도 못 했다.

아! 내 머리 뚜껑은 아직도 열려있는데.



뚜껑을 잘 여는 아들 녀석 때문에

내 머리 뚜껑이 열린 날.

화장실 문은 안 여는 아들 녀석 때문에

머리 뚜껑이 더 열린 날.


아들아 저녁밥은 말이다,

짭짤하고 비릿한 콩나물을 곁들인

오리 볶음밥 어떠하냐.



‘열기’를 잘 하는 복이는

그 전적이 화려하다.

현관문, 냉장고 문에 이어

오늘 콩나물 솥뚜껑, 밥솥 뚜껑 추가.

‘열기’를 잘 하는 아들을

나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줬다.

이것이 진정한 엄마의 오픈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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