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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Jun 07. 2024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참외를 포크로 찍어 복실이의 입에 넣어줍니다.  긴 머리카락이 과일과 같이 입에 딸려 들어갑니다. 세심한 손길로 입으로 들어가는 머리카락 한 올을 떼어 줍니다.  먹을 때는 머리를 하나로 묶으라고 매번 잔소리를 하는데 요즘은 더워도 여간해서 머리를 묶지 않네요. 긴 생머리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나 봐요. 더위와 불편함을 감수하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닙니다. 긴 생머리를 간수하려면 먹는데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도 긴 생머리 나풀거리며 다니길 소원했습니다. 푸석한 곱슬 단발머리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아이롱 파마, 매직 파마가 나오더군요. 긴 머리를 만들어 잡아매고 당장 시내에 있는 미용실로 달려갔지요. 찰랑찰랑 생머리를 풀어헤치고 휘날리며 다닐 수 있겠구나.


그것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끈질긴 곱슬머리는 파마 한 번의 노력으로 펴지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미용사는 한 번만 더 하자며 머리에 약을 들이부었고 장장 다섯 시간을 미용실 의자에 꿈에 부푼 채 앉아 있었습니다. 푸석한 머리는 쫙쫙 펴지기는 했으나 며칠 후 파마약과 매직 기계의 열을 견디지 못하고 뚝뚝 끊기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머리를 펴기 위해 노력해 보았으나  늘 질끈 묶고 다니는 머리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감당하지 못해 매직파마를 하는 날 하루를 빼고는 일 년을 하루 같이 머리를 묶고 다녔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쫙쫙 펴주는 마법과 같은 파마도 포기했습니다.


대신 굽실굽실 캔디 머리를 만들어 보고자 한 번씩 파마를 합니다. 그럼 머리가 더 부풀어 올라 감당이 안 됩니다. 파마를 하는 날, 그날 바로 머리를 묶습니다. 묶기 위해 파마를 합니다.





어머니가 계셨다면 저도 길고 차분한 머리를 우아하게 풀고 다녔을까요? 앞으로 흘러내린 몇 가닥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귀 뒤로 넘기며 음식 먹는 연습을 했을까요? 참외와 함께 입에 딸려 들어가는 머리카락 한 올을 떼어주며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나도 그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찰랑찰랑한 긴 생머리는 여인들의 로망인가 봅니다. 복실이의 예쁜 꿈도 지켜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좔좔 흐르는 것이 혼자 잘 감지 못하네요. 단발로 자르자고 타협을 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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