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세탁법

<수건 걸다>의 본편임.

by 눈항아리

태어난 지 오천오백 일이 겨우 지나 젖은 수건 거는 법을 배운 우리 아들 복이. <수건 걸다>의 범인을 나는 복이로 추측하고 있다. 복이는 현장에서 잡혀도 태연하게 그랬을 테다. “걸라고 했잖아요. 걸었는데 무슨 상관이죠?” 젖은 수건을 세탁 바구니에 안 넣는 것이 어디냐 되려 생색을 냈을 아이. 젖은 수건과 마른 빨래 구분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 굳이 그걸 나눠야 하는 이유를 묻는 아이가 복이다.


그런 복이가 요즘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패션의 척도는 택배로 옷 이 배달되는 정도로 알 수 있다. 열흘이 채 안 되어 도착하는 택배. ‘엄마 주문해 주세요. ’로 시작된 옷 구매는 스스로 앱을 깔고 주문을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옷 구경은 유튜브로 하는 신기한 세대, 바지는 밑위길이까지 꼼꼼히 챙기고, 옷 사이즈를 대중하기 위해 구매 사이트의 댓글도 열심히 읽어본다. 그렇게 주문한 옷들은 한결같다. 뭐든 한 우물을 파는 게 좋다지만 아이가 지금까지 주문한 옷은 청바지, 청바지, 청바지, 청바지. 후드티, 후드티, 후드티, 후드티, 후드티...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같은 청바지가 분명한데 아이는 같은 청바지가 아니라 그러고, 후드티도 색깔이나 옷감이 다 다르다고 한다. 또 다른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세탁법이다. 옷을 구매할 때 세탁법도 읽어보는 멋진 우리 아들이다. 옷을 살 때 얼마나 꼼꼼히 읽어보고 알아보고 사는지 섬세한 모습에 반할 것 같다.


옷걸이가 연예인 뺨치게 좋은 우리 복이는 뭘 입어도 멋들어지지만, 요새 스스로 구입해 입는 옷은 바로 광고를 찍어도 좋을 정도로 완벽하다. 자식 키우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얼이 빠지게 보고 유명 남자 연예인에 관심도 없던 내가 헤벌쭉 벌어지는 입을 주체 못 하고 있다. 그러나 나도 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모두 천재인 줄 착각했던 것처럼, 이 또한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그러나 고슴도치가 제 새끼 이쁜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운명적인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것이 착각이든 망상이든 어떠하랴.



그런데 과연 좋기만 할까. 장단은 늘 함께 다니는 법이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이다. 멋진 복이가 주문한 옷이 도착하는 날이면 나에게 세탁법을 알려준다. 주부 경력 18년 차인 나에게 말이다. 아들이 아는 것을 굳이 왜 내게 알려주는가.


이유인즉슨, 나의 일률적인 세탁 방식 때문이다. 나의 세탁법은 이러하다. 옷은 흰색과 색깔 옷 두 가지로 구분한다. 세탁 물 온도는 40도, 헹굼 5회, 다른 버튼은 절대 안 건든다. 세탁이 끝나면 바싹 완전 건조 2회. 빨래는 다시 널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따끈따끈하게 말라서 나온다. 세탁 몇 회만으로 280밀리미터 새 양말은 초등 막내 딸아이가 신어도 좋을 만큼 작아지고, 바지 길이는 내 바지인지 딸아이 바지인지 모를 만큼 짧아지는가 하면, 새로 산 옷의 허리가 껑충하게 올라가 있는가 있기도 하다.


엄마의 오랜 세탁의 세월을 보고 경험한 복이는 새로 산 옷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엄마 이건 드라이클리닝해야 해요.” 아들이 말했다.


“그런 옷은 사지 마.” 내가 대답했다.


“엄마 이건 건조기 돌리지 말래요. ” 아들이 말했다 .


“그럼 안 마를 텐데. ” 내가 대답했다.


“엄마 이건 그늘에 말리래요. ”


“엄마 이건 건조 중간에 꺼내줄 수 있나요? ”


“엄마 이건 중성세제 넣고 빨아줄 수 있나요?”

“엄마 손빨래는 어떻게 해요? ”


“엄마 그냥 세탁소 보내면 안 될까요? ”

“엄마 첫 세탁은 꼭 드라이클리닝하라는데요?”


“엄마 이 옷은 단독 세탁하래요. ”


“엄마 이 옷은 이염이 있을 수 있어요. ”


처음엔 대꾸를 하던 나는 차츰 말 수가 줄었다. 아이가 꺼내달라면 꺼내달라는 대로, 빨아달라면 빨아달라는 대로, 복이가 주문하면 열심히 실행했다.



아들은 나를 콕 집어 부른다. 그리고 정확하게 빨래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상대를 정확하게 지정하고 말을 전하는 법은 내가 얼마 전에 어렵사리 터득한 방법인데, 아들은 단번에 깨우치고 적용하고 있다.


옷마다 세탁법이 다르다는 건 최악이다. 빨래라도 적으면 말을 안 한다. 6인 가족의 빨래를 돌리면서 틈틈이 내 잘난 아들의 새 옷을 따로 세탁한다. 또는 세탁 중간에 꺼내고 따로 건조대에 널어준다.


내 멋진 아들, 하하. 그냥 그 후드티와 그 청바지를 모두 세탁기에 넣고 후르르 돌려서 건조기에 바싹 구워주고 싶다.


내 아이의 세탁법은 편리하다. 내가 집안일을 때로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말로 시키는 것처럼. 내 아이도 입 하나로 세탁을 한다. 그 어미에 그 아들. 그 어린 나이에 터득한 세탁법이니 청출어람이라 해야 할까.



옷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는 옷장이 필요하다고 했고, 옷장 안에 넣을 제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낮잠을 자다 머리가 붕 뜨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후드 티를 뒤집어쓰고 다닌다. 후드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들이다.


마지막으로 주문한 아들의 후드티는 이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극세사와 비슷한 느낌의 옷은 이불처럼 포근하다. 그 옷이 최악이었다. 단독 세탁, 드라이클리닝, 그늘 건조, 건조기 금지, 손세탁, 중성세제 사용.


복이 아들은 말했다.


“엄마 옷이 왜 줄어요? 건조 안 하면 되겠지요?”


그렇게 세탁기에서 나온 옷을 하루 말려 널어놓았더니 아들은 그랬다.


“엄마 중성세제로 빤 거 맞죠?”


‘#%#!$%^@#$^!$^$!^!#^%!!!!!!!’


엄마를 미치게 만드는 내 아들의 세탁법.


‘그 옷들을 어느 날 건조기에 싹 다 돌려 버릴 테다! ’


내 아이가 패션에 눈을 떴고, 세탁에 눈을 떴다. 젖은 수건 구분도 못 하던 아들이 이제는 나를 가르치려 들다니.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마구 돌리던 나의 세탁기가 그립다.


‘세탁기 마구 돌려도 되는 실용적인 옷을 사란 말이야. 건조기 두 번 바짝 구워도 좋은 튼튼한 옷을 사란 말이야. 안 그럼 아들 너 스스로 손빨래를 해. 입으로만 세탁하지 말고 너 스스로 세탁을 배우는 게 좋지 않겠니? 그렇다고 욕실 바닥에 거품 칠을 해놓고 거실 바닥에 물 뚝뚝 떨어뜨려 놓으면 혼난다! ’


가슴속에서 마음의 소리가 되어 울린다.


그래도 멋진 내 아들, 옷 입는 센스도 좋고 체형도 멋지다.


엄마는 아들 사랑과 세탁 현실 사이에서 구르고 있다.


신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을 주신다고 한다. 그동안 집안 일에 적응이 되어 간다 했더니, 신은 나에게 새로운 시련을 내려주시려고 하나 보다. 어쩐지 요즘 빨래가 쉽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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