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화이트 데이
화이트 데이에는 사탕을 먹어야 한다. 어제 딸아이가 핸드폰 문자로 보내준 사탕을 마음으로 받았다. 아침엔 사탕 모양 케이스에 포장된 미니 케이크를 먹었다. 마음으로 받고 단것을 음미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날이라고 또 원했다. 먹고 싶어서 그런 건지 받고 싶어서 그런 건지 왜 그런 건지.
바쁘니 마트 갈 시간은 안 되고 배달 앱에서 주문을 할까 싶다가도 누군가는 하나 사와 내 입에 사탕을 물려줄 거라 철석같이 믿고 싶었다. 딸아이는 왕 큰 츄파춥스를 받고 싶다고 했는데 근처 편의점에 가서 살까 고민도 해 보았다.
“사탕 사줄까? ” 남편이 말만 했다.
“됐어. ” 나는 쿨한 척 말하고 삐쳤다. 묻기는 왜 묻고 그럴까. 말이 아니라 행동을 원한다. 그냥 몇 백 원짜리 막대사탕이라도 하나 사와 입에 물려주면 될 것을. 난 정말 마음 넓은 여자인데.
퇴근 후 방문한 마트에는 사탕 선물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시간이 늦어서 다 팔렸거나, 우리 동네 마트에선 화이트데이가 그리 별스러운 날이 아닌지도 몰랐다. 사탕 대신 화이트데이를 기념해 초콜릿을 20퍼센트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종 모양 화이트 초콜릿을 두 개 샀다. 화이트데이이니 화이트 초콜릿이 좋을 것 같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아몬드가 들어간 초콜릿을 두 개 들었다. 살까 말까 망설이다 내려놨다. 남편은 야식을 안 먹으니까. 절대 사탕을 안 사줘서 남편의 초콜릿을 안 산 건 아니다. 그냥 여러 개 들어있는 종 모양 초콜릿을 나눠먹으면 되니까 그런 거다.
밤중에 모인 가족들은 각자의 짐을 거실에 부려 놓았다. 나는 장바구니 속에서 초콜릿 두 봉을 꺼냈다. 아이들은 저희들이 사 온 과자를 핑크 봉투에서 우르르 쏟아냈다. 오랜만에 보는 간식이었다. 과자가 무려 여섯 봉. 아이들 얼굴에 오랜만에 화색이 돌았다.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식탁으로 모여들 태세다.
“나는 초콜릿도 사 왔는데 왜 내 사탕은 아무도 안 주는 거야!”
“엄마, 나는 과자로 사 왔어요.” 셋째 달복이가 애교를 섞어 말했다.
“사탕 여자가 남자한테 주는 거 아니었나?” 남편이 어이없게 물었다.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 거지! 그것도 몰라?” 큰소리쳤지만 긴가민가 하였다. 건망증이 여기서 또 발동되다니. 누가 누구에게 주는 거지? 나에게 혼동의 문장을 건넨 남편이 능글맞게 또 한 마디 한다.
“한 잔 할 거지?”
특별한 날인 건 아는 모양이다. 화이트 데이가 무슨 특별한 날이라고. 흥. 사탕을 안 사줘서 절대 삐친 건 아니다. 나는 쿨한 여자라서 화이트 데이에 화이트 초콜릿도 스스로 사 오지 않았던가.
“아니, 안 마셔. “
“그럼 과자랑 초콜릿은 언제 먹어?”
“내일 먹을 건데?”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남편의 눈을 뒤로하고 과자와 초콜릿을 안 보이게 정리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후후.
그런데 그걸 찾아서 먹는 녀석이 있었으니, 둘째 복이다. 복이는 초콜릿을 뜯어서 주머니에 한 움큼 넣었다.
“복아, 그거 여섯 명이서 나눠 먹을 거야. 다 먹으면 안 돼.”
초콜릿 봉지 하나를 우르르 쏟아서 개수를 세었다. 밤에 안 먹는 사람을 위해 (나를 포함해) 공평하게 초콜릿을 여섯으로 나눴다.
“복아, 열 개씩 먹으면 되겠다.”
첫째 복동이도 거실에 나와 초콜릿 배분하는 걸 구경했다. 제 몫을 알고 돌아서는 첫째의 뒷모습은 의기양양했고, 둘째는 처량해 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화이트 데이는 저물어갔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사탕의 여운은 아침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묵직한 마음을 담아 ‘화이트 데이’ 글을 쓰고 있다. 아침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생색을 낸다. 마음의 글을 쓰고 있는데 사탕 얘기가 내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나 보다. 나는 마음이 넓고도 뒤끝이 긴 여자인가 보다.
“엄마 사탕 줄까요?” 큰 아들 복동이가 말했다.
그 남편에 그 아들이다. 주지도 않고 말한다. 역시나 닮았다.
<야식을 참아라, 딱 100일만>은 초등 딸아이 복실이와 함께하는 야식 참기 프로젝트입니다.
복실이가 초콜릿 하나 정도는 먹을 줄 알았는데 먹지 않았다. 딸아이도 야식 참기에 진심인가 보다. 여섯으로 초콜릿을 나워준 건 참 잘한 일 같다. 복이에게는 좀 미안하기는 했다. 복이에게는 내 것을 몇 개 더 나눠줘야겠다.